0의 행진 니퍼트, 그 뒤에 양의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기사 이미지

‘사자 사냥꾼’ 니퍼트(왼쪽)가 27일 대구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7이닝 3피안타 무실점 호투로 두산의 6-1 승리를 이끌었다. 니퍼트의 철벽투 뒤에는 ‘작은 감독’ 역할을 한 포수 양의지가 있었다. 4회를 무실점으로 막고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니퍼트와 양의지. [대구=뉴시스]

기사 이미지

뚝심의 곰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두산 베어스가 27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 2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6-1로 꺾었다. 1승1패가 된 두 팀은 서울 잠실구장으로 옮겨 29일부터 3∼5차전을 치른다.

두산 6 - 1 삼성
포수 출신 현재윤이 본 2차전
니퍼트는 몸쪽 직구로 타자 흔들고
양의지는 유인구 요구해 또 흔들고
리드 잡자 공격적인 공 배합 주문
준PO부터 24.1이닝 무실점 도와

 두산 선발 더스틴 니퍼트(34)는 7이닝 동안 3피안타·무실점 호투로 경기 최우수선수가 됐다. 삼성 선발 장원삼(32)도 4회까지 1피안타·무실점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5회 6안타를 맞으며 4실점, 패전투수가 됐다.

기사 이미지

현재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 할 정도로 투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투수의 공 배합을 리드하고, 야수 전체를 이끄는 포수의 역할도 투수 못지않다. KS 2차전에는 삼성 포수 출신으로 2002·2010년 KS를 경험한 현재윤(36) SBS스포츠 해설위원이 포수의 시각으로 경기를 짚어봤다. (※괄호 안이 현 위원의 해설.)

 삼성 선발 장원삼은 정규시즌 때 백업포수 이흥련과 호흡을 맞췄다. 그러나 류중일 감독은 이흥련이 아닌 주전포수 이지영을 기용했다. 류 감독은 “(큰 경기에선) 이지영이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영의 리드는 장원삼의 패턴을 최대한 살리는 쪽이었다. 바깥쪽 직구로 볼카운트를 잡고, 유인구로 슬라이더를 던지고, 바깥쪽 체인지업을 떨어뜨리는 게 장원삼이 가장 좋아하는 배합이다. 이날 장원삼의 체인지업 낙폭이 꽤 컸다. 이지영은 이를 잘 활용해 초반 호투를 이끌었다.)

 니퍼트는 1회 말 삼성 선두타자 박한이를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1차전에서 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두산은 니퍼트를 앞세워 2차전 초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두산 포수 양의지가 공격적인 리드를 했다. 분위기 반전을 위한 영리한 선택이었다. 니퍼트는 좌·우 타자를 가리지 않고 몸쪽 직구를 잘 던진다. 삼성 타자들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타자에게 불리한 볼카운트 때 양의지는 슬라이더 등 유인구를 요구했다.)

 니퍼트는 3회 말 1사 후 김상수를 볼넷으로 내줬다. 3볼-1스트라이크에서 들어온 공을 주심이 볼로 판정하자 니퍼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김상수는 2루 도루에 성공했고 양의지의 송구 실책으로 3루까지 갔다. 그러나 박한이·박해민이 삼진으로 물러나 삼성은 선취점을 얻지 못했다.

 (김상수에게 볼넷을 내줄 때 양의지가 스트라이크존으로 미트를 넣는 ‘프레이밍’을 더 오래 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볼 판정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니퍼트는 흥분했고, 두산의 위기였다. 그러나 양의지는 배짱 있게 몸쪽을 찌르는 공을 요구해 타자들을 압박했다. 이날 외야에서 내야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장타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을 양의지가 잘 파악했다.)

 두산은 5회 초 2사 3루에서 김재호의 적시타로 선제점을 얻었다. 허경민이 안타를 쳤고, 박건우의 직선타가 장원삼의 왼 발목을 강타하며 내야안타가 됐다. 두산은 민병헌의 2타점 적시타, 김현수의 1타점 적시타로 스코어를 4-0으로 벌렸다.

 (타선이 한 바퀴 돌면서 두산 타자들이 삼성 배터리의 패턴을 파악했다. 장원삼의 직구 스피드가 떨어지는 시점이었다. 장원삼이 중심 발에 부상을 입어 투구에 힘을 100% 싣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러나 삼성 배터리는 직구 위주의 승부를 계속하다 대량 실점을 했다. 장원삼의 힘이 떨어지는 타이밍을 잘 잡아 공 배합을 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니퍼트는 준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24와3분의1이닝 무실점을 이어갔다.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이닝 무실점 신기록이다. 니퍼트는 두산 불펜의 부담을 줄여줬다.

기사 이미지

 (두산으로선 이기는 것만큼이나 투수진의 전력 소모를 줄이는 게 중요했다. 양의지는 리드를 잡자 더욱 공격적인 공 배합을 했다. 니퍼트의 투구수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니퍼트는 92개만 던지고 내려가면서 힘을 비축할 수 있게 됐다. 양의지는 큰 그림을 그리며 경기를 풀어가는 ‘작은 감독’ 같았다.)

대구=김식 기자, 현재윤 해설위원 seek@joongang.co.kr

양팀 감독의 말

▶김태형 두산 감독=1승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니퍼트가 에이스답게 잘 던져줬다. 정규시즌 때 못해 준 걸 지금 해주는 것 같다. 1차전에서 부상으로 빠진 정수빈의 공백은 박건우가 잘 메워줬다. 경기를 치르면서 중간 투수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지만 야수들의 컨디션은 전체적으로 괜찮다. 3차전 선발은 장원준이다.

▶류중일 삼성 감독=니퍼트를 공략하지 못한 게 패인이다. 빠른 직구에 슬라이더도 낮게 들어오더라. 장원삼이 잘 던지다가 5회 연속 5안타를 맞고 4실점 한 게 아쉽다. 3회 1사 3루에서 점수를 낼 기회를 살리지 못해 흐름이 두산 쪽으로 넘어갔다. 3차전은 클로이드가 선발로 나온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