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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집서 학교선 실습 경희대의‘거꾸로 수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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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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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영화 때문에 독립영화는 아예 상영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률, 일방적 수업의 10배 이상
내달부터 일반인 상대 강좌 개설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480만 명이 봤다. 퀄리티의 문제 아닌가.”

 예상치 못한 상사의 반박에 부하 직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극장에선 돈 되는 영화들만 스크린에 걸기 때문에….” 부하 직원이 말꼬리를 흐리며 해명을 늘어놓자 상사는 “관객이 좋아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게 잘못인가. 극장에 자선사업을 요구할 순 없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24일 오전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의 ‘보고서 작성법’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부하와 상사 역할을 맡아 이런 상황을 연출했다.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이론 수업을 먼저 듣고 왔다. 주제는 ‘1000만 관객 영화를 제작하는 데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하는가’였다. 역할극이 끝난 뒤 이 수업을 담당하는 철학자 탁석산 교수는 “보고서는 기본적으로 권력관계라는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 상사의 반박에 억지로 변명을 둘러대면 감정싸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쉽게 무지를 인정하면 준비 부족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탁 교수는 “보고서는 제 주장을 펴는 게 아니라 상사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게 목적”이라며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야 ‘전에 했던 얘기는 알고 한 거구나’ 하고 신뢰도가 높아진다”고 답변했다.

 부하 직원 역할을 맡았던 이지수(46·여)씨는 “실제 상황을 체험해 보니 배운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고 말했다. 상사 역의 윤미정(38·여)씨도 “보고를 받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니 어떤 내용이 보고서에 들어가야 할지 명확하게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수업은 한 학기 동안 9시간씩 온·오프라인 강의로 진행되는 플립러닝(Flipped Learning·거꾸로 학습) 방식으로 이뤄진다. 동영상으로 이론을 먼저 배우고 교실에서 실습과 토론을 통해 복습한다.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이 지난 학기부터 이 방식을 수업에 도입했다.

 미국 행동과학연구소에 따르면 학습 후 24시간 뒤 기억에 남는 비율이 일방적 수업은 5%에 불과했지만, 토론(50%)과 체험·실습(75%) 등 참여형 학습의 효과는 매우 뛰어났다. 강태완 언론대학원장은 “플립러닝은 온라인으로 시청각 학습을 먼저 하고 오프라인에서 토론과 실습을 한다. 학습 피라미드의 모든 교수법을 활용하고 있어 교육 효과가 월등하다”고 말했다.

 플립러닝은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다. 지난 학기 이 대학원에서 첫 플립러닝 강좌로 개설된 길영로 창조공학연구소장의 ‘기획과 전략’ 수업은 학생 만족도가 최상위권(91.1점)이었다. 당시 수업을 들었던 성우 박영재(42)씨는 “온라인 예습과 오프라인 복습을 병행해서인지 한 학기가 지난 지금도 수업 내용이 뚜렷이 남는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각 분야 최고 권위의 전문가들을 영입해 플립러닝 수업을 확대할 것”이라며 “11월부터는 일반인도 수강할 수 있는 비학위 과정(‘호모 커뮤니쿠스’)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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