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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 노모가 내민 팥죽에 터져버린 눈물샘

중앙일보

입력

 
치매에 걸린 남녘 노모는 북에서 온 맏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2차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인 25일 금강산호텔의 단체상봉장에서 김월순(93) 할머니는 북에서 온 주재은(72)씨에게 “누구야?”라고 묻고 또 물었다. 김 할머니를 모시고 온 둘째 아들 주재희(71)씨가 “어머님, 아들이에요”라고 하자 그제서야 할머니는 원망하는 눈빛으로 “그동안 왜 안 왔어. 두 달에 한 번은 날 보러 와야지”라고 말했다. 북에 두고 피난온 지 60년이 넘어서야 맏아들을 만난 할머니는 “그래도 죽기 전엔 보고 가는구먼”이라며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도 이내 “누구냐”고 묻기를 반복했다.

맏아들 주재은 씨는 남측 동생들에게 “‘어머니’라고 한 번은 불러보고 싶었다”며 마음 아파했다. 차남 재희 씨는 “(25일 오전) 개별상봉 때 어머니가 정신이 잠깐 돌아왔을 땐 형님을 잡고 우셨다”고 가슴을 쳤다.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국제시장’의 살아있는 스토리를 간직한 가족도 있었다.
강원도 고성군에 인접한 통천군에서 배를 타고 피난 와 부산에 정착한 진 영(84)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영화처럼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살아온 진 할머니는 북에 두고 온 부모님과 언니를 보는 게 소원이었다. 이번에 연락이 닿았지만 언니는 3년 전 사망했고, 헤어질 당시 세살박이었던 조카 한순호(68)씨가 대신 나왔다. 진 할머니는 순호씨를 단박에 알아보며 “우리 순호가 맞구나.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너가 욕봤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곤 조카가 가져온 북녘 부모님의 흑백 사진을 만지고 또 만졌다.

60여년의 그리움을 이산가족들은 음식에 담았다. 북측 아들 한송일(74)씨는 오리고기를 잘게 잘라 남녘의 노모 이금석(93) 할머니 앞 접시에 놓아드리고, 새우의 껍질도 먹기좋게 까 놓았다. 행여 노모가 눈물을 볼세라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노모는 노모대로 “만나서 기쁘다”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아들이 좋아하던 팥죽을 내밀었다. 끝내 아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모자는 한동안 수저를 들지 못했다.

딸에게 줄 꽃신을 챙겨온 남측의 최고령자 구상연(98) 할아버지는 첫 날인 24일 단체상봉에서 북녘 딸에게 꽃신을 신겨주지 못했다. 그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게 할아버지는 고령에 피로가 겹친 듯 딸과 헤어지던 때 얘기만 반복하며 횡설수설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할아버지를 업고 금강산행 버스에 올랐던 남측 아들은 “(북측)누님들에게 오늘(25일) 개별상봉 때 (꽃신을)신겨드리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남측에서 온 이승국(96) 할아버지는 북측 가족을 만나 2006년 사별한 아내가 쓰던 회색 목도리와 가방ㆍ시계를 선물했다. 이 할아버지는 “통일되면 갖다주려고 보관했던 유품들”이라고 했다. 사별한 아내는 북에 두고 온 남동생 셋을 항상 그리워했다고 한다. 북의 동생은 이번 상봉에 거동이 불편해 오지 못하고, 대신 아내인 김정옥(86)씨가 참석했다. 이 할아버지와 함께 온 딸 이충옥(61)씨는 “엄마가 남동생 임정순씨를 북한식으로 ‘덩순이’라고 부르며 그리워했다”며 “어느날 엄마가 ‘덩순이가 꿈에 보여 이리 오라고 했는데 가만히 있더라. 하늘나라로 갔다 보다’며 우셨는데, 얼마 안돼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2차 상봉은 26일 작별상봉으로 마무리된다. 이충복 북한 적십자중앙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4일 "상봉행사가 끝나면 상시 접촉과 편지 교환 등을 (남측과) 협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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