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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안 나오는 영화 본 적 있나 ‘쿡방’ 다음 트렌드는 ‘住’가 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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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호 6 면

종합건축사사무소 이공(異空)의 류춘수(69) 회장은 쓴소리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건축사가 스스로를 낮춰서 부르는 ‘선비 사(士)’자가 아닌 ‘스승 사(師)’자를 쓰는 제안이나 상암 월드컵경기장과 올림픽체조경기장 등 굵직한 건축물이 완공될 때도 시공사 이름은 대문만하게 쓰고 정작 설계자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을 앞장서서 비판해 왔다. “남들이 ‘건축가(家)’라고 불러주면 좋죠. 일가를 이뤘다는 건데.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칭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럼 최소한 건설 현장의 하청업자 취급은 받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죠.”


이토록 꼿꼿한 류 회장이 지난 2013년 서울국제건축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을 처음 맡았을 때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건축계의 큰 어른 격이긴 하지만 여전히 붓펜을 잡고 필드를 누비는 바쁜 몸이기 때문이다. 넌지시 “원래 영화를 좋아했느냐”고 물으니 웬걸, “영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답이 돌아온다. 이내 “영화 중에 건축물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가 없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건축 속에 살지 않는 사람이 없다”며 “먹방을 넘어 쿡방이 한창 유행인 걸 보면 이제 의식주 중 ‘주(住)’가 곧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28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리는 제 7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역시 건축과 문화의 만남이 연결선상에 있다. “사람들이 건축에 대해 가지는 고정관념은 크게 두 가지예요. 우리가 그 안에 속해 있으니 대단히 잘 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아예 너무 어려워서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그래서 이번에는 그 벽을 허무는 데 중점을 뒀다. 영화제를 주최하고 있는 대한건축사협회 창립 50주년과 맞물려 ‘세대공감’을 주제로 잡고 건축가의 삶과 작품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개막작 ‘뵘 가문의 건축과 함께하는 삶’이 대표적인 예다. 건축가 아버지에게 배우고 일찌감치 1986년 건축계의 노벨상이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고트프리드 뵘이 역시 건축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 아들과 손자, 즉 4대에 얽힌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류 위원장은 “아버지의 명성으로 주요 프로젝트를 따내지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가고 싶어하는 아들의 이야기는 꼭 건축이 아니어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안토니 가우디의 대표작이자 아직도 공사가 되고 있는 대성당 제작기를 담은 ‘사그리다 파밀리아: 가우디의 유산’이나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설계한 건축가를 그린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 미국을 디자인하다’ 등 총 19개 작품 중 11편이 아시아 프리미어다. “마스터 앤 마스터피스, 건축의 재발견, 어번스케이프, 비욘드 등 4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건축 뿐만 아니라 패션ㆍ사진ㆍ회화와 접목한 영화도 다양하게 구비했으니 많이들 오셔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번엔 가격도 1만원에서 6000원으로 대폭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건축영화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이 건축을 보다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죠. 더불어 2017년 9월 서울에서 일명 ‘건축 올림픽’이라 불리는 국제건축사연맹(UIA) 총회가 열리는데, 그때 한국 건축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제작 지원은 물론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해야겠죠.” 소문난 드로잉광답게 그는 또 하나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게 본인의 일이든, 다른 사람의 일이든 건축을 알리는 일이라면 두 팔 벗고 나서왔던 것처럼 말이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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