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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에 달한 인문학 열풍 지금이 바로 고전 읽어야 할 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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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호 30면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생겨나 어둠을 뚫고 나왔다. 그렇게 세상은 비롯되었다. 말의 힘은 대단했다.”


그랬다. 역자의 말마따나 말은 곧 신이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냈고, 말의 힘에 예민하게 주목했던 그리스 사람들은 말이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는 사회와 정치체제를 구상하고 그 안에서 말로써 사람들을 설득해 나갔다. “주제가 무엇이든 상대보다 더 훌륭하게 말해야만 한다”는 캐치프레이즈처럼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은 읽는 이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고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뚝뚝 듣는 꿀처럼’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달콤하게 적시는 페리클레스라 하더라도, 아테네에서 가장 유명한 수사학 교사인 이소크라테스의 연설이라 할지언정, 수천 년의 시공간을 건너 4~5세기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곤 문득 궁금해졌다. 민음사는 도대체 어쩌자고 인문학 원전 읽기 프로젝트인 ‘생각’ 총서 발간을 기획했을까. 그것도 10년간 100권이라는 방대한 사이즈로 말이다.

이번 시리즈를 기획한 양희정(42) 편집부장은 “인문학 열풍이 정점을 찍은 지금이 바로 고전을 읽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맹호 회장께서 내년 민음사 창사 50주년을 맞아 인문학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획을 해 보자고 하셨을 때만 해도 막막했어요. 도서정가제로 인해 출판 불황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렇게 무거운 기획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흐름이라는 게 있잖아요. 자기계발서 시장은 지난해부터 줄어들고 있었고 여기저기 퍼져있는 인문학이 내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려면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 고전이 필요하겠구나 싶었죠.”


1970년대 ‘세계시인선’을 시작으로 ‘오늘의 시인 총서’ ‘이데아 총서’ ‘대우학술총서’ ‘세계문학전집’ 등의 바통을 이어받을 새로운 기획물이 필요하기도 했다. 양 부장은 “교양이란 말을 제대로 복원해 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고 했다. 고급 취향으로 치부되는 교양이 아닌 삶을 조직할 수 있는 실행력으로서의 의미를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래서 그는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 연구교수 등 전문가 집단과 논의 끝에 플라톤이 아닌 이소크라테스를 시작점으로 삼았다. 이데아로서의 절대선이 아니라 현실 상황에 맞는 지혜를 추구하는 수사적 인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달 우선 출간된 4권의 면모를 살펴보면 그런 의도가 한층 더 잘 드러난다. 키케로의 주요 연설문 7개를 담은 『설득의 정치』는 앞뒤로 배경과 뒷이야기를 함께 실었다. “사실 고전 1권을 읽으려면 다른 참고문헌을 뒤적여 봐야 하는 게 어려워서 포기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수고를 덜어주고 조금이나마 현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그림과 사진도 많이 넣었어요. 대중철학자 강신주의『감정수업』을 기획할 때도 48가지 감정과 소설, 미술 작품을 함께 녹였더니 독자들이 보다 편안하게 느끼는 걸 경험했거든요.”


국내 초역 작품을 중심으로 하되 ‘창조적 사고력 제고’라는 목표도 세웠다. 프랑스에서 불태워졌던 금서인 볼테르의 『불온한 철학사전』,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혁신 아이콘인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의 시학』이 포함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사실 한국에서는 인문학이라고 하면 문사철을 많이 떠올리는데 이번 기획은 문예철을 바탕으로 삼았어요. 르네상스 시대에는 철학가가 곧 예술가고 그들이 미술도 하고 건축도 하잖아요. 그런데 후대에 분야간 장벽이 생겨났고 최근에는 다시 이를 허무는 학제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요.”


야심찬 기획에 시장도 화답하고 있다. 참고할 만한 서적이 많지 않은 음악 분야는 특히 새로운 고전의 등장을 반가워했다. 내년 여름 출간될 2차분 역시 르네상스 건축가 팔라디오나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 세네카 등 그간 제대로 만나보기 힘들었던 작품들로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의 『가난한 사람들』, 중국 청나라의 사상가 담사동의 『인에 대하여』, 마키아벨리의 『군주』등은 이미 상당히 작업이 진행된 상태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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