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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화성엔 식물에 필요한 질소 많아 우주 감자·고구마 키울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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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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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홀로 남겨진 뒤 살아남기 위한 식량인 감자를 키우는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를 그린 영화 ‘마션’의 한 장면. [사진 20세기폭스코리아]

지구에서 2억㎞ 이상 떨어진 화성.

영화 ‘마션’ 으로 본 우주 먹거리
NASA, 우주환경서 식물 재배 연구
올 8월 우주정거장서 상추 길러 먹어
토마토·옥수수·호밀·딸기도 성공
아시아권서 먹는 채소 생산량 많아
중국, 우주 농업 굴기 꿈꿔 종자 개발
채식 땐 방귀 심해 메탄 폭발 위험
아폴로호, 콩·배추·브로콜리 금기

 화성에 홀로 남겨져 지구 귀환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주비행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마션’에는 뜻밖의 ‘먹방’이 등장한다.

 먹방 재료는 감자다. 화성에 조난당한 식물학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는 살아남기 위해 감자를 재배한다. 주방을 비닐하우스와 비슷한 무공해 감자밭으로 만든다. 물은 수소와 산소를 결합하는 장치로 조달한다. 동료가 남긴 분뇨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거름으로 쓴다.

 천신만고 끝에 흙 속에서 새싹이 올라올 때 관객들은 그와 함께 기쁨을 맛본다. 쪄서도 먹고 케첩도 뿌려 먹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내내 감자튀김 생각이 절로 난다. 감자덩이에 목이 멘 나머지 포도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장면도 인상 깊다.

 와트니의 ‘우주 감자’는 1995년 10월 미 항공우주국(NASA)과 위스콘신대 연구진들이 했던 실제 실험에서 힌트를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감자가 무중력 상태에서 자라는지 확인하기 위해 씨감자를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에 실어 우주로 보냈다.

 일견 완벽해 보이는 영화 속 감자 재배에 ‘옥에 티’가 있다고 연구진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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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직접 키운 상추를 맛보는 우주인 유이 기미야, 첼 린드그렌, 스콧 켈리(사진 위 왼쪽부터). 2030년대 화성에서 이뤄질 우주 농사의 상상도(가운데). 이탈리아 우주비행사 사만타 크리스토포레티가 무중력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 [사진 미 항공우주국]

 와트니가 인분을 감자에 그냥 붓는 장면이다. 82년부터 NASA와 협업해 우주 농사를 연구해 온 유타주립대 농작물 생리학과의 브루스 버그비(식물학자) 박사는 “인분을 식물에 바로 주는 건 미생물학적으로 대단히 위험하고 식물에 독이 된다”며 인분은 수개월간 퇴비로 묵히는 재처리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화성 토양에 인체에 해로운 과산화염소산염이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평균 영하 80도인 화성의 기온, 부족한 태양광 등 우주 농사엔 악조건이 산적해 있다.

 과학자들은 우주와 유사한 환경에서 식물을 기르고 품종 개량을 연구해 왔다.

 상추 재배가 대표적이다. 지난 8월 10일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는 농작물 재배 시설인 ‘베지(Veggie·식물의 줄임말)’에서 키운 레드 로메인 상추를 우주인 세 명이 맛나게 먹는 장면이 유튜브에 공개됐다. 로마인들이 먹었다 해서 ‘로메인’이라 불린 이 상추는 시저 샐러드에 들어간다. 지난해 5월부터 ‘베지(Veg)-01’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NASA가 1년여 만에 맺은 결실이다. 상추를 처음 맛본 린드그렌 비행사는 “무척 신선하다”며 흡족해 했다. 우주인에게 부족한 철분을 녹황색 채소에서 보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이 우주에 심으려고 시도했던 채소는 많다. 순무·양파·근대·마늘·오이·파슬리·바질을 비롯해 오메가3가 풍부한 아마씨, 아삭아삭한 식감의 일본산 쌈채소인 미즈나(水菜), 허브의 일종으로 피클을 만들 때 쓰는 딜(dill) 등이 있다. 우주인들은 새싹채소를 선호한다. 다 자란 채소보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3~4배 많기 때문이다. 튤립·칼란코에 등 꽃 종자도 우주 재배 목록에 포함됐다.

 화성 대기에는 식물 성장에 필수인 질소가 풍부하다는 게 장점이다. 최근 미 애리조나대 연구진들은 화성과 비슷한 환경에서 고구마와 딸기를 키워낼 수 있다고 발표했다. 화성과 유사한 환경에서 50일간 비료 없이 토마토·갓류식물·밀·겨자잎을 키울 수 있다고 미 유타주 소재 ‘화성 사막 연구센터’가 지난해 밝혔다. 러시아 최초의 여성비행사 옐레나 세로바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사과나무 묘목을 시험 삼아 키우기도 했다.

 우주식물 재배의 꿈이 시작된 건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옥수수 종자가 우주와 비슷한 환경에서 재배됐고, 그 뒤에 호밀과 면화 씨앗이 길러졌다. 71년에는 적갈색 침엽수인 레드우드, 유럽산 단풍나무 등 500종의 묘목 씨앗이 아폴로 14호와 함께 달로 향했다.

 80년대에는 미국에서 토마토 종자를 우주로 올려보내 ‘변형된 형태’의 토마토를 얻었다. 96~99년에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러시아어로 ‘평화’)에서는 작고 푸른 난쟁이 밀, 배추, 유채의 재배 실험이 진행됐다. 미국은 99년 실험용로 널리 쓰이는 유채과 식물인 애기장대를 재배해 40일 만에 열매를 맺었다. 특히 아시아권에서 길러 먹는 채소가 서양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단위면적당 생산량도 많고 병충해에도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식량 수확을 가능케 하는 우주 농사는 공기 순환에도 좋다. 우주인이 호흡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광합성에 쓰이고 식물 덕에 우주인들은 부족한 산소를 얻는다.

 우주 강국이자 농업대국인 중국은 우주 농업 굴기를 꿈꾸고 있다. 오염된 땅이 아닌 우주 공간에서 종자 개발을 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중국에선 87년부터 우주 농업이 국가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중국 국가 식물항천(우주) 육종공정기술 연구센터는 경제성 있는 작물 등 200여 종의 우주 재배를 연구해 왔다. 2012년 중국 우주비행사들이 화성과 달에서 신선한 채소를 키우기 위해 만든 밀폐선실 ‘생태생명 보호시스템’ 실험실에서 채소 4종의 시험재배에 성공했다.

 여러모로 좋은 채소지만 우주에서 마음껏 섭취하자니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방귀다. 방귀의 성분인 수소와 메탄은 불이 붙기 쉽다. 밀폐된 우주선 안에서 방귀를 계속 뀌게 되면 최악의 경우 폭발 위험까지 있다. 그래서 60년대 달 탐사선 아폴로호에서는 ‘방귀 유발자’인 콩·배추·브로콜리가 금기식품이었다고 한다.

[S BOX] 다코야키·달걀부침·비빔밥 등 우주식 다양해져

우주 식량은 과거엔 ‘맛없다’는 혹평을 받았다. 수분이 빠진 상태에서 압축된 건조식품이거나 튜브 형태로 짜 먹는 간이식이라 씹는 맛이 덜했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개선을 거듭한 끝에 이제 우주식도 제법 구색을 갖추게 됐다.

 우주에서 접하는 고향의 맛은 각별하다. 러시아 우주인은 보르시(붉은 순무가 든 수프)나 트보로크(우유로 만든 러시아 전통식)를 즐긴다. 문어를 밀가루 반죽에 넣어 구운 일본 다코야키도 우주식으로 개발됐다. 중국 우주비행사 녜하이성(攝海勝)은 “새우살 달걀부침, 흑(黑)후추 쇠고기볶음 등 중국 특색의 우주식이 좋다”고 말했다. 돼지고기를 가늘게 찢어 만든 위샹러우쓰(魚香肉絲), 닭고기 요리인 궁바오지딩(宮寶鷄丁) 우주식도 있다.

 한국은 우주인 배출을 계기로 대표 음식 10종을 우주 식단에 올렸다. 밥·김치·라면·된장국·수정과 등이다. 전주시와 정읍 방사선연구소는 2년까지 저장되는 ‘우주식’ 전주비빔밥을 내놨다. 우주 라면은 국물이 없는 비빔면 형태라서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즐거움은 없다. 소금과 후추는 액상이다. 가루가 기내에 뿌려졌다가는 공기정화기 등에 들어가 고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제대로 에스프레소 커피를 내려 마시게 된 건 올해 5월부터다. 특수 제작된 기계로 내린 커피를 무중력 전용 컵에 담아 마신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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