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核 없으면 침략 당한다" 집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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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金正日)위원장은 잘난 체도 하지 않고 잘 웃고 온후하지만 정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거나 잘못을 하면 국가 최고 간부라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불 같이 호통치기도 한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속 요리사 등으로 13년간 북한에 머물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56)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담은'김정일의 요리인-가까이서 본 권력자의 본모습'(후소샤.扶桑社 발간)을 20일 펴냈다. 아래는 이 책의 요약.

◆핵무기 집착=金위원장은 핵무기에 집착했다. 1989년에 내게 "핵무기를 안 가지면 다른 나라가 쳐들어 온다"는 말도 했다. 95년 12월 30일 중앙당 선전비서 김기남이 "핵 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와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방사능 피폭(被爆) 증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고 하는 보고를 옆에서 들었다.

87년 대한항공 폭발 사건 때 평양 한 호텔의 철판요리 코너를 찾은 김정일은 요리사였던 내게 "우리가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金위원장은 94년부터 미국 정찰 위성에 포착되지 않게 항상 늦은 밤이나 새벽에 움직였다. 늘 벤츠 10대 행렬의 선두에서 달렸다. 94년 김일성 사망 때 김정일은 상당히 고민하는 것 같았다. 종일 방에 박혀 있기도 했다. 한번은 권총을 꺼내놓고 있어 부인이 "당신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하며 소리친 적도 있다.

또 내가 초밥을 만들 때 처남인 장성택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의견 차이가 있었는지 金위원장이 냅킨 통을 냅다 던진 일도 있었다. 또 군 고관에게 "그놈을 쏘았느냐"고 묻는 것도 들었다.

◆낙마(落馬)설은 사실=92년의 김정일 낙마설은 사실이다. 사고가 난 날 金위원장, 부인 고영희, 나, 김정일의 아들 순으로 달렸는데 커브 지점에 金위원장의 말이 서 있었다. 떨어진 김정일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머리와 어깨를 심하게 다친 그는 꼼짝도 안했다. 열흘 뒤 식사 때 나온 김정일은 팔에 깁스를 했고 선글라스를 벗으니 오른쪽 눈이 시커멓게 멍들어 있었다.

◆"내사랑 셋째 아들"=金위원장은 성혜림과 고영희에게서 두 아들을 얻었다. 성혜림의 장남 김정남이 일본 밀입국에 실패한 뒤 귀국을 못해 고영희의 첫아들 김정철이 후계가 된다는 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김정일은 정철이에게 "쟤는 안돼. 여자애 같아"라고 타박을 놓곤 했다. 그는 차남 정운이를 애지중지한다. 정운이는 金위원장과 체형까지 닮았다. 부인 고영희는 연애 시절 둘이 자동차 속에서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같은 한국 노래를 밤새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기쁨조에 "옷 벗으라"=신천초대소 연회장에서 파티를 하던 어느 날 金위원장이 갑자기 디스코를 추고 있던 기쁨조 다섯명에게 "옷을 벗으라"고 했다. 속옷까지 다 벗으라 그랬다. 지시에 따라 기쁨조들은 발가벗고 춤을 췄다. 간부들에겐 "너희들도 같이 춤을 추라. 그러나 만지진 마라. 그러면 도둑놈"이라고 했다.

94년부터 7명의 간부가 이런 연회에 왔다. 오진우 원수.박재경 대장.김명국 대장.조명록 차수.김대식 상장 등이었다.

부인들도 함께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들은 어딘가에 다녀왔다며 선물을 바치곤 했다. 또 간부들은 늘 "장군님,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절대 지켜드리겠습니다. 지하실도 완성됐고 온도는 22도로 설정돼 있습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도쿄=오대영.김현기 특파원

<사진 설명 전문>
1990년 3월 20일 저자(左)가 북한에서 89년 결혼한 기쁨조 출신의 엄정녀(中)와 함께 김정일 위원장을 관저로 찾아 갔을 때의 모습. 저자는 아이로 보이는 듯한 뭔가를 안고 있었던 듯 책에서는 이 부분을 검은 매직으로 지웠다. [후쇼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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