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 살려 범죄 예방 … 경쟁률 10대 1 의경 홍보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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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전남경찰청 홍보단 오디션에 참가한 후보 7명이 심사를 앞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기타를 연주한 이지만씨와 마술 공연을 한 도재혁씨(왼쪽에서 셋째와 여섯째) 등 2명이 최종 합격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재능 있는 마술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공연이 가능하답니다. 심사위원 여러분들도 모두 저를 따라 해보세요.”

전국 지방경찰청 중 4곳서 운영
21개월 동안 노인 시설 돌며 공연
전남 오디션엔 전국서 지원자 몰려

 지난 14일 전남 무안군 삼향읍 전남경찰청사 1층 남악홀. 경찰 홍보단 오디션에 참가한 도재혁(20·강원도 정선군)씨가 갑자기 심사위원들을 향해 “양 팔을 앞으로 뻗어달라”고 요청했다. ‘즉흥적인 마술도 가능한가’라는 유윤상 전남경찰청 홍보담당관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유 담당관은 도씨의 마술 공연을 위한 CD 플레이어가 작동을 멈추자 즉흥공연을 제안했다.

 담담한 표정으로 무대에 선 도씨는 두 손을 내민 심사위원들을 향해 자신의 빈 손바닥을 보여준 뒤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집중하세요. 하나, 둘, 셋”을 외친 도씨가 주먹을 펴자 심사위원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아무 것도 없었던 도씨의 손 안에 동전 하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도씨는 정비를 마친 CD 플레이어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자신이 준비한 카드와 봉을 이용한 마술공연을 차례로 선보였다. 도씨의 무대 매너와 마술을 지켜보던 심사위원들은 신중한 표정으로 채점표에 점수를 적어갔다.

 의경 대원들로 구성된 경찰 홍보단에 끼와 재주가 넘치는 젊은이들이 몰리고 있다. 군 복무를 하는 21개월 동안 자신의 장기를 살려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가수나 배우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어서다. 기존 단원 중 전역자가 생길 때만 신규 대원을 뽑다 보니 오디션 지원률이 10대 1을 넘을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전남경찰청의 홍보단원 2명을 뽑기 위한 이날 오디션에는 7명이 참가해 춤과 노래·연기 경합을 벌였다. 워낙 선발 문턱이 높다 보니 참가자들 출신지도 강원도 정선군과 서울시, 경남 통영시, 전북 전주시 등 다양하다. 지원자들의 실력도 수준급이다. 오디션 때 즉흥 마술을 선보인 도씨의 경우 국내 각종 마술대회 수상과 해외공연 경험을 갖고 있다. 도씨는 미리 준비해간 CD가 작동되지 않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수준급의 마술 공연을 한 점을 인정받아 합격자가 됐다.

 또 다른 합격자인 이지만(20·경기도 오산시)씨는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면서 작사·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다. 이씨는 이날 기타·키보드 연주와 함께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불러 눈길을 끌었다. 차분한 발라드곡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르는가 하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트로트곡 ‘당신은 나의 동반자’를 열창하기도 했다. ‘춤은 못 추냐’는 심사위원의 물음에는 입고 있던 자켓 대신 후드티를 입고 막춤을 추기도 했다. 이씨는 “모두들 회피하려는 군 복무 기간을 꿈을 키우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지원했다”고 말했다.

 경찰 홍보단은 전국 16개 지방경찰청 중 전남과 서울·경기·부산경찰청 등 4곳에서 운영 중이다. 홍보단원이 되려면 지방경찰청별 오디션에 합격한 뒤에도 1차 적성검사와 2차 신체·체력 검사, 3차 면접 등을 통과해야 한다. 홍보단에 선발되면 학교나 노인 시설을 돌며 춤·노래·연극 등을 통해 학교 폭력이나 범죄 피해 예방을 위한 공연을 하게 된다. 지난 15일 개막한 나주 국제농업박람회 등 각종 행사에 초청돼 축하공연을 하기도 한다. 임동율 전남경찰청 홍보단장은 “각종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으면서도 선임 대원들의 재능까지 배울 수 있는 게 홍보단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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