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의심의 경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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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호 27면

지인의 소개로 영화를 보았다. ‘PK, 별에서 온 얼간이’라는 인도영화다. 집으로 돌아갈 우주선 리모컨을 잃어버린 외계인의 이야기인데 종교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담았다. 결말 또한 기발하고 유쾌해서 재미를 더해줬다. 어떤 종교인이라도 이 영화를 보았다면,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잘못된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믿음의 문제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드는 좋은 영화였다.


영화의 여운이 길었던지, 비단 종교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우리의 믿음은 괜찮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잘못된 믿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 말이다.


살면서 몇 번의 누명을 쓴 적이 있다. 처음 겪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렸을 때 오빠가 자기 용돈을 책 속에 끼워 두었는데 없어졌다며 나를 닦달한 일이 있었다. 당시 난 초등학생이었고 오빠는 중학생이었다. 내가 못 봤다는데도 오빠는 믿지 않고 나를 들들 볶았다. 저녁이 되어 부모님이 개입했다. 경찰 출신인 아버지의 취조는 무서웠다. 온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신랄했다. 나의 증거는 말뿐이었으나, 오빠는 내가 그 책을 꺼내 보는 걸 목격했다는 진술로 나를 옥죄었다. 나는 오빠 책이 읽고 싶어 꺼내 본 것은 맞지만, 돈은 본 적이 없다는 주장을 울며불며 되풀이해야 했다.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부모님은 오빠에게 용돈 관리를 못했으니 다시 줄 수 없다고 했고, 내게는 오빠 물건에 대한 일체 접촉금지령을 내렸다. 우리는 서로를 원수 보듯했다. 그런데 며칠 후, 오빠가 미안하다며 슬그머니 과자 한 봉지를 내밀었다. 잃어버렸다던 용돈이 다른 책 속에 있더라는 것이다. 아버지께 말했다가는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니 말하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였다. 내가 힘만 세었어도 아버지 손에 죽기 전에 내손에 먼저 죽었을 거라며 나는 앙팡지게 별렀다.


이와 비슷한 억울함은 이후에도 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믿음과 의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몇 해 전, 김형태 변호사의 책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인간의 의심이 얼마나 사람을 처절하게 무너뜨리는지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억울함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특히 “세상 만물이 저마다 개체로 존재하는 한, 그래서 그 개체가 서로 다르고 개체가 자기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려 하는 한, 피할 수 없는 게 개체 사이의 충돌이다”는 말은 씁쓸하게 가슴을 후볐다.


우리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자신이 본 것만 보고 판단하고,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어떤 때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저장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오해와 왜곡이 너무나 당연시되는데 그걸 모른다. 저마다 이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만큼 그 골도 깊다. 그래서 더 사람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 같다. 상대방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올바른가도 중요하다. 정직한 마음 속에 의심이 없어야 그 관계가 편안해지는 법이다. 그래야 억울한 일을 안 만들고, 가슴에 맺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문득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끝에 나오는 얘기가 생각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멋지단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원영 스님metta4u@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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