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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쥐고 흔드는 무사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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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DB]

흔히 일본은 이제 재기가 불가능하다고들 생각한다. 아무리 애써도 20년 넘게 겪어 온 경기침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인상이다. 서구 기업인들이 중국에 열광하고 각국 정부가 이슬람국가(IS)·시리아·이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촉각을 곤두세우는 동안 일본은 국제 무대 변두리로 밀려났다.

아베 신조 총리는 재신임부터 안보 법안·대학 개혁까지 원하는 것을 모두 해낸다

조명을 받지 못하는 사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전후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사실은 지난 9월 19일 새벽 일본 의회가 시민의 대규모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한층 확고해졌다. 자위대라 불리는 일본군은 이제 직접 위협을 받지 않더라도 집단자위권을 구실로 영토 밖에서 교전이 가능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국방 정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다. 1947년 더글러드 맥아더 미 장군이 일본을 점령했을 당시 제정된 일본 헌법은 항목 9조에서 평화주의에 전념할 것을 선언하며 전쟁 포기를 명시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존 다워는 퓰리처상을 받은 저서 ‘패배를 껴안고’에서 “평화주의 헌법의 급진성은 전후 권력을 쥐고 있던 지도층을 충격에 빠뜨렸다”고 설명했다.

기시 노부스케는 그 지도층 중 한 명이었다. 일본이 점령한 만주국의 국무원에서 일하다가 전시에 도조 히데키 내각의 상공대신으로 임명됐다. 일본이 항복한 뒤 미국은 전쟁범죄 혐의로 기시를 체포하고 3년 간 수감했지만 재판에 회부하진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기시는 총리가 됐다. 미국이 소련과의 냉전에 여념 없을 때였다.

기시는 헌법 9조를 혐오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대신 일본 전후 체제의 또 다른 기둥인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하고자 했다. 그는 그 조약이 일본을 미국의 속국으로 만들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를 개정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1960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을 설득해 조약을 수정하고 국회에 제시해 비준을 요구했다. 도쿄 시민은 이에 반발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도중에 경찰이 대학생을 사살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기시는 총리직을 사임했고 조약은 개정되지 않았다.

기시는 아베의 외조부다. 일본 진보 세력 사이에서 아베는 최소 국수주의자로, 최악의 경우엔 군국주의자로 통한다. 지난 9월 안보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다시 한번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미국의 속박에서 벗어나 스스로 실력을 행사하는 나라를 꿈꾸던 기시의 목표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번 입법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당시와 매우 비슷하다. 법안을 상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집회는 1960년 안보조약 개정에 반대해 벌어진 대규모 시위 ‘안보투쟁’을 방불케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시는 실패했지만 아베는 성공했다.

아베의 측근들은 그가 외조부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주장을 부인한다. 그들에 따르면 일본의 안보 환경은 국방비를 급격히 늘리고 공개적으로 영토 분쟁을 일으키는 중국의 호전성에 좌우된다. “이는 총리의 외조부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아베의 한 보좌관은 말했다. “안보 법안이 왜 국회를 통과했는지 궁금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물어보라.”

진보 세력이 아베를 못미더워하는 분야는 안보 정책뿐만이 아니다. 지난여름 아베 내각 문부과학성은 일본 내각 대학에 “사회과학·인문학과를 폐지하고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는 학과로 전환할 준비를 하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 교육계를 놀라게 했다. 이 편지에서 일본 정부는 지난해 아베가 OECD 연설에서 말했듯이 “보다 실용적인 직업 교육”을 포함하는 교육 과정을 시행하고자 노력한다고 밝혔다.

아베의 대변인들은 이 뜻밖의 요구를 아베노믹스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급격한 양적 완화, 엔화 평가 절하, 극도로 느슨한 재정 정책을 일컫는 경제 정책 말이다. 아직까지는 그 어떤 노력도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아베는 아베노믹스의 마지막 단계인 경제구조개혁이 결정적이리라고 공언했다. 대학을 향한 강압적 요구가 이 부분에 해당한다. 공학·경제·법학 전공자를 늘리고 사학·정치학을 비롯한 인문사회학 전공자를 줄여서 고등교육을 기업측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것이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는 이 소식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게이단렌은 일본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구성된 경제 단체로 일본 내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힘 있는 기관 중 하나다. 지난 9월 9일 자신들이 구하는 인재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들며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학생”이라며 문부과학성이 원하는 대학생과 “정반대”라고 밝혔다.

반대자들, 특히 전통적으로 진보 성향인 교사노동조합 역시 정부의 발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애국 교육과정”을 시행을 추진하는 권위적 국수주의자들의 농간에 놀아난다고 본다. 애국 교육과정은 일본 역사를 미화하면서 일본의 경제뿐 아니라 군사력을 증강하는 데 도움이 될 학생들을 길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기시가 총리 재임 당시 비슷한 개혁을 시도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처럼 정치적인 해석이 나오는 데는 기시와 연관된 아베의 가족사 탓이 크다. 원하는 바를 얻어내고야 마는 아베의 공격적인 정치 성향에도 일부 원인이 있다. 아베노믹스는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지난 3년 간 일본인의 삶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최근 막 통과된 안보 법안 역시 마찬가지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대학 개혁을 향한 진보측의 의구심은 약간 과한 듯하다. 아베 정권의 개혁안이 잘못됐을 수는 있지만 거기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문부과학성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물러나기는커녕 협조하지 않는 대학에는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번에도 아베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역사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일본 총리로 전후 일본의 복구를 주도했던 요시다 시게루를 꼽는다. 아베는 임기를 마치기도 전에 그 다음가는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외조부가 자랑스러워할 법하다.

글=빌 포웰 뉴스위크 기자
번역=이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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