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인민’ 97번 외친 김정은, 핵은 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기사 이미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오른쪽)과 중국의 권력 서열 5위인 류윈산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지난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서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날 25분간 연설 했다. [AP=뉴시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0일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행사에서 대중 연설을 했다. 은둔을 좋아했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차별화다. 25분 연설의 키워드는 세 가지였다. 인민, 강국건설, 그리고 세대교체였다.

평양 열병식 25분 육성 연설
“허리 숙여 인민에게 감사”
핵 언급 없었지만 핵배낭 등장
류윈산 손잡고 “북·중 혈맹”
미국엔 “어떤 전쟁도 상대”

 김정은은 6900여 자의 연설에서 ‘인민’을 97번 언급했다. 그는 “인민보다 더 귀중한 존재는 없으며 인민의 이익보다 신성한 것은 없다”며 “깊이 허리 숙여 (인민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했다. 고려대 남성욱(북한학) 교수는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면서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비해 취약한 통치 기반을 감안한 것”이라며 “자신과 당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메시지 ” 라고 말했다.

 국정 목표로는 ‘강국건설’을 내세웠다. 김정은은 연설 중 김정일 시대의 표어인 “강성대국”을 말했다가 “강국건설”이라고 정정하기도 했다. 강국건설의 방법론은 없었다. 연설문에선 ‘청년’도 강조됐다. 자신을 중심으로 한 새 세대의 새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였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선군’이라며 군을 앞세운 아버지와 달리 ‘당’을 중심으로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게 이번 연설의 메시지”라고 했다.

 대외정책과 관련해 눈에 띄는 건 ‘핵’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핵과 경제의 두 축을 앞세운 병진노선을 강조해온 김정은은 이날 핵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경제·국방 병진”이라고만 했다.

 두 가지 해석이 뒤따른다. 대화의 문을 열어뒀다는 긍정론이다. 조성렬 북한연구학회장은 “2013년 리위안차오(李源潮) 부주석이 방북해 국제사회를 자극할 ‘핵’이라는 말은 쓰지 말라고 종용한 일이 있다”며 “대외관계 개선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대해 “미제가 원하는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상대해줄 수 있으며”라고 한 부분도 선제 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란 해석이 나왔다. 대내외 방송 메시지가 달랐던 점도 북한이 대외관계 개선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을 뒷받침했다. 대외용인 조선중앙TV 와 달리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조선중앙방송에선 열병식에 대해 “연평도 도발자들에게 무자비한 불소나기로” 라는 호전적 표현을 썼다.

 하지만 신중론도 만만찮다. 핵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핵 배낭을 멘 열병식이 있었다. 미국은 공식 논평을 유보했다. 김정은으로선 굳이 핵을 언급해 미국 등 국제사회의 비판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주목할 대목은 북·중 관계의 회복 여부다. 김정은은 지난 9일 오후 평양에 도착한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의 회담에서 북·중 혈맹을 강조했다.

 10일 열병식 행사에서 북한은 2만여 명의 군 병력을 동원했다. 1만2000여 명이었던 지난달 중국의 열병식보다 규모가 큰 사상 최대다. 하지만 장비는 30여 종, 290여 대였고 신형은 별로 없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