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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자유 허락하지 않는 한 한국서 노벨상 수상자 안 나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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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호 12면

손병두 회장은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춘식 기자

손병두(74) 한국선진화포럼 회장은 요즘 말로 스펙(Spec)이 화려하다. 그의 이력을 보면 재계(전경련 상근부회장)는 물론이고 교육계(서강대 총장)·언론계(KBS 이사장)·종교계(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등 활동영역과 관심 분야가 넓다. 1988년 동서경제연구소 대표이사를 시작으로 무려 27년간 수많은 기관과 단체의 수장 자리를 맡아 왔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10년간 일한 그는 지난해 5월 호암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83년 삼성을 떠난 지 31년 만의 복귀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발족 당시 민간 기금 모금에 앞장섰던 인연으로 2013년 8월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제2대 이사장이 됐다. 정치권의 러브콜이 수차례 있었지만 응하지 않았다.


통일경제연구협회 이사장을 맡아 통일에까지 관심 분야를 넓힌 그를 만나 각종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후반기에 들어선 데 대해 그는 “역대 대통령은 예외 없이 임기 말에 지지율이 떨어졌다”며 “박근혜 정부가 노동 개혁을 비롯해 4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해 경제를 살리면 사상 처음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재계 원로이면서 통일 문제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 이유는. “남북한이 지불하고 있는 분단 비용이 엄청나다. 현상유지 비용이 통일 비용보다 훨씬 크다. 이것을 통일 이후 북한 재건 비용으로 돌려 쓴다면 큰 이득이 될 수 있다. 남한의 5000만 명과 북한의 2400만 명을 합쳐 독일과 비슷한 인구 8000만 명의 통일국가가 되면 자체 내수시장이 커져 경제자립도가 높아지고 성장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 다만 무력통일은 불가능하고 평화통일만이 유일한 길이다. 남한체제의 우월성이 증명된 만큼 이를 수용하도록 북한 당국과 주민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통일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통일 기금을 모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통일 이후 체제에 대해 남한만이라도 국론 통일을 이루는 것이 급선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시스템을 갖춘 통일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남한의 자본·기술을 북한의 자원·노동력과 결합하면 ‘통일대박’이 가능할까. “북한이 국경과 시장을 개방하고 남북한의 ‘3통’을 허용하고 실질적인 시장경제체제의 길로 들어선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북한의 인력과 자원을 이용할 수 있고, 북한의 낙후된 인프라의 건설투자가 허용된다면 한국 경제의 블루오션(Blue Ocean)이 될 수 있다. 다만 북한 당국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남북한 교류와 협력이 누적되는 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다.”


-산업화 세대는 가난과 시련을 극복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는데. “올해가 광복 70주년이지만 나 자신도 해방 직후 배가 고파서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자랐다. 고향에서 진주중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해 경복고에 입학했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가톨릭대 의대를 못 다녔다. 재수 끝에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의사는 한 생명을 구하지만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 모두를 구제한다는 생각에서 경제학을 선택했다. 우리 세대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그런 대한민국 경제의 활력이 많이 떨어졌다. “현재 상황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 경제주체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지수는 매우 차갑다. 한국이 빠진 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돼 대외 여건은 더 나빠지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국민이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재 위기의 가장 큰 문제다. 위기를 공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제는 안으로 ‘대한민국병(病)’이 점점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의 재도약이 가능할까. “여야 정치인들이 정쟁에 매몰되지 않고 위기에 공동 대처할 때 가능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4대 개혁 과제는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이뤄내야 한다. 특히 노동 개혁은 무늬만의 개혁이 아닌 실질적인 개혁이 꼭 이뤄져야 한다. 노동 개혁은 한국 경제를 살리는 아주 시급한 과제다. 노사정 합의는 1년여를 끌고도 핵심을 놓쳤다. 제대로 된 노동 개혁과 규제 혁파로 기업가정신과 기업인의 의욕을 살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가는 길이 살 길이다. 규제와 제재가 넘쳐나는 곳에 창의가 나올 수 없다. 기업가들을 격려하고, 박수를 쳐주고, 응원을 해줄 때 열심히 뛸 수 있다. 손흥민·김연아도 국민의 응원을 받으며 세계적인 스타선수가 됐다.”


-결국 정치가 활로를 뚫어줘야 할 텐데. “민주주의의 근간인 3권 분립정신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3권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3각 다리처럼 국가 운영의 틀을 든든히 떠받쳐야 하는데 지금은 국회에 권한이 너무 치우쳐 3각 다리가 불완전하다. 이것이 다시 3각 정립(鼎立) 상태로 가서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정을 운영하려면 대통령 임기는 5년 중임제가 좋다고 본다.”


-교육 개혁 복안이 있다면. “우리 교육제도는 산업화 시대에 맞는 시스템이었다. 이제는 지식과 창의가 중요한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교육시스템을 확 뜯어고쳐야 한다. 대학에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줄 때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 국제경쟁력이 있는 교육과 연구가 가능하다. 지금 고등교육이 보통교육화되고 있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직업교육장으로 전락했다. 지금과 같은 교육제도로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어렵다. 대학입시와 정원관리, 등록금 정책 결정에서 대학의 자율과 경쟁시스템을 허용해야 한다. ‘대학에 자유를 허(許)하라’고 외치고 싶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이뤘지만 선진화는 미흡하다. “선진화 문턱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시민의식이 선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과 도덕적 자산(Moral Asset)의 축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직·배려·준법과 감사정신 등 기본적인 시민의식 덕목이 부족하다. 세월호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서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도덕윤리가 빠지면 시장경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가정·학교·사회에서 끊임없이 인성(人性) 교육을 해야 한다. 특히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중요하다. 부모와 교직자·종교인·정치인·경제인 등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가장 중요하다.”


손병두 경남 진주 출생. 경복고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헐트국제경영대학원 석사. 한양대 경영학 박사. 동서투자자문 전 대표. 한국경제연구원 전 부원장.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 이사장. 교육과나눔 전 이사장. 삼성꿈장학재단 현 이사장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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