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패권 술래잡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8호 18면

강일구 일러스트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모든 분야에서 시작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중국의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요즘은 미국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온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TPP vs 일대일로(一帶一路)의 대결, 미국의 동진(Pivot to Asia)전략과 중국의 서진(Pivot to the West) 전략의 경쟁이다.


동서 간 패권경쟁의 하나인 미국의 TPP는 태평양을 건너오고 있고, 중국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유라시아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패권 술래잡기다. 누가 잡고 누가 잡힐까? 최근 500년간 세계패권의 역사를 보며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미국으로 이어졌지만 한번 패권국이 다시 패권국이 된 적이 없다. 쓰러져가는 태양과 떠오르는 태양은 100년 주기로 교차했다.


“중국 같은 나라에 경제질서를 맡길 수 없다.” “세계 2위를 배제한 TPP, 쓴맛 본다.”미국과 중국은 이렇게 서로 협박한다. 무슨 말일까? 원자재와 중간재의 세계 최대시장인 중국이 중남미와 아세안국가에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고, 미국은 아시아와 자기의 앞마당인 중남미에서 공들인 기득권을 서로 에둘러 얘기하는 것이다.


TPP는 ‘ABC- WTO’“중국 생산, 미국 소비”의 30년 세계경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셰일가스의 상용화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값싼 에너지를 무기로 해외로 나간 미국의 제조업을 다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 정책을 시작했고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제압하는 방법은 자유무역이었다. 미국보다 먼저 달에 우주선을 쏘아 올릴 정도로 강했던 소련을 죽인 것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체제였다. 계획경제 소련을 자유무역 체제에 집어넣어 죽였다. 다음으로 GATT를 세계무역기구(WTO)로 게임의 룰을 바꾸고 2001년 중국시장도 통째로 먹겠다고 중국을 WTO의 패러다임에 집어넣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미국이 중국 시장을 먹은 것이 아니라 제조대국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뺏어 갔고 전세계 달러를 긁어가는 불상사가 생겼다. 덕분에 제조업은 나가고 소비만 남은 미국은 빚을 얻어 소비를 하는 바람에 세계 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제조업이 떠난 미국은 셰일가스의 상용화 성공으로 소비대국에서 제조대국으로 전환을 모색하지만 넘어야 할 허들이 하나 있다.


현재의 WTO 패러다임 하에서는 죽었다 깨도 미국은 제조업에서 중국을 못 넘어선다. 그러면 방법은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TPP다. 미국의 TPP 전략은 애초부터 중국을 빼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TPP는 ‘ABC(Anyone But China=누구나 괜찮아, 중국만 빼고) WTO’다.


환경보호, 지재권 조항을 포함시켜 미국에 유리하고 중국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항으로 시작했다. 문턱을 높여 놓고 들어오라는 것이다. 애초부터 제조에서는 중국을 이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서비스와 환경, 첨단산업으로 승부한다는 게 미국의 전략이다.그러나 대선을 앞둔 미국 내부 속사정도 복잡하다. 민주당은 TPP 반대를 선언하고 공화당도 대선 주자들이 일자리 없어지는 문제로 적극적이지 않다. 여차하면 미적거리다 국회 비준이 2017년 오마바의 임기를 넘어갈 수도 있다. TPP의 앞날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한국, ‘神의 한 수’ 전략 필요미국은 금리인상으로 신흥국의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을 위협하고, 중국은 원자재 구매 축소로 신흥국의 실물경제를 위협한다. 중국이 원자재 구매 축소 사인만 보이면 중남미와 아세안 경제는 공포다. 신흥국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 금융과 실물 어느 하나를 택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균형잡기다. 그래서 신흥국들이 미국과 중국에 양다리 걸치는 건 필연적이다.


한국 경제에 미국과 중국은 버릴 수도, 버려지지도 않는 운명이다. TPP 대응에서 한국은 신(神)의 한 수를 두는 전략이 필요하다. 패(牌)는 활용하라고 있는 것이다. 먼저 가입한다고 반드시 유리한 것도 아니다. 여건의 조성과 실리를 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국익에 유리한 방향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대안을 제시해야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부가 하면 항상 헛발질이라고 비난을 쏟아붓는 건 그만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싸우면 연합군 만들기 전쟁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협박과 회유, 당근과 채찍이 난무한다. 협박과 채찍을 회유와 당근으로 바꾸는 것이 외교이고, 능력이다. 미국과 중국은 아시아 3대 경제대국인 한국을 아쉬워한다. TPP에서 한국은 그다지 불리하지 않다. 미국과 중국은 ‘게임 룰 체인지’ 전쟁 중이다. 한국에 TPP는 먼저 가입하는 전략보다 2등 전략이 좋을 수도 있다. 잘 활용하면 굴러들어온 호박이 될 수도 있다.


전병서?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