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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대로 보는 마음의 작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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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호 29면

사람들은 한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전체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 ‘부자’라 생각하거나, 학업 성적이 뛰어나면 ‘모범생’이라 단정짓는다. 하지만 이는 후광이 비추는 일부분을 전체로 착각하는 일종의 오류다. 현실에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녀도 부자와 거리가 멀거나, 학업 성적이 뛰어나도 모범적 생활과 동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후광효과에 빠진 뇌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직업이 주는 후광으로 인해 사람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가의 말은 쉽게 사실이라 믿는다. 심지어 해당 전문분야와 관련이 없어도 전문가 의견은 대중의 신뢰를 얻기 쉽다.


마음 속 기대와 현실의 불일치는 인지적 불편함을 유발한다. 이 때문에 우리의 뇌는 선행된 기대에 맞추어 현실을 해석하고, 부분으로 전체를 평가하려 한다. 2012년 미 연방수사국(FBI)은 싸구려 와인에 프랑스 명품 와인라벨을 부착해 무려 130만 달러(약 15억 원)에 달하는 부당이익을 챙긴 범인을 검거했다. 주목할 점은 당시 세계적인 와인 전문가들조차 범인이 위조한 명품라벨에 속아 와인 맛까지 명품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후광효과는 인과관계가 없는 것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령 외모와 지적 능력은 관련이 없지만 사람들은 외모가 뛰어난 사람을 더욱 똑똑하게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의 89.2%는 “한국에서는 외모로 사람들을 평가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설문에서 국내기업 인사 담당자의 84.2%는 “외모가 취업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준수한 외모는 지적 능력이나 성격, 태도까지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후광효과가 만드는 일관성은 매우 강력해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위인들에 대한 평가는 비현실적으로 완벽한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링컨 대통령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역시 대부분 완벽에 가깝다. 링컨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의 국가 지도자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노예를 해방했고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게티스버그 명연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한 시사주간지는 링컨의 실제 모습을 재조명한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연구에 따르면 링컨은 정치적 경쟁자를 매도하는 술수를 쓰거나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변호사 시절에는 훗날 노예해방을 주도한 것과 달리 노예 소유주를 위해 일했다. 심지어 주 의원 시절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려는 것을 공격하기도 했다.


위대한 인물에 대한 예상치 못한 평가는 낯설고 불편하다. 사람들은 ‘영웅은 끝까지 착한 일만 하고, 악당은 죽을 때까지 나쁜 짓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이 아닌 이상, 현실세계에서는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함이 있고 실수도 하기 마련이다.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도 때로는 본의 아니게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반대로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도 어쩌다 남을 도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영웅의 악행’과 ‘매국노의 선행’이라는 단어를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후광효과로 인해 사람들은 기존에 지니고 있던 기대나 믿음에 맞춰 현실세계를 쉽게 재구성한다. 이러한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될수록 우리의 뇌는 자신의 기대나 믿음과 다른 현실이 존재할 가능성을 모색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 각자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기 어렵다. 우리는 세상을 믿는 대로 볼 뿐이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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