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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은 이렇게 시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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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몰라도 즐거운 재즈페스티벌
9~11일까지 제12회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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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자라섬은 일교차가 큰 편이다. 낮에는 반팔을 입어도 밤 공연을 위해 겨울옷을 준비해야 한다. [사진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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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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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아직 반팔 옷과 이별하지 못한 10월, 겨울에나 입을 오리털 파카를 꺼내본다. 이번 주말 제12회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이 있다.

경춘선 가평역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캠핑장이 나온다. 텐트 무리를 지나 잔디광장 너머에 북한강이 보인다. 자라섬이다. 도로로 연결돼 섬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낮에는 반팔 옷을 입어도 해가 지고 메인 공연이 시작하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 서울에서 체감하는 날씨와는 딴판이다. 준비해온 겨울옷을 꺼내 입는 사이 재즈의 밤이 열린다. 20대 청춘들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커플들은 사랑하는 그와 담요를 덮고 재즈를 껴안는다. 누군가는 '따뜻한 와인'(뱅쇼) 한 잔에 몸을 녹인다. 나오는 밴드가 어떤 음악을 하는지, 무슨 장르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즐기면 재즈다. 느끼면 찾아 듣기 시작한다.

어떻게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가평의 이름 모를 섬에서 국제 재즈페스티벌이 열리게 됐을까. 거기 인재진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총감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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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진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총감독 [중앙포토]

2003년 공연기획자 인재진은 그의 강연을 들었다는 가평군 공무원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기서도 재즈페스티벌을 할 수 있을까요?" 인재진은 "못할 게 뭐 있겠습니까"라고 '대충' 대답했다. 지역 축제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던 시기다. 가평군 공무원은 공연장으로 점찍은 공설운동장, 축구장, 청평 고수부지 등을 보여줬다. 실망감을 안고 돌아서려는 인재진에게 그가 마지막 제안을 했다. "비가 내리면 잠기는 섬이 한 군데 있는데요. 거기라도 한번 가 보시겠어요?" 인재진은 당시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를 따라간 곳은 거의 방치된 섬이었다. 골재용 모래를 채취하는 허허벌판 황무지. 그런데 그때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여기 정말 멋지네." 그곳이 자라섬이다. 스태프들은 다들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인재진 스스로도 '정말 한다고 하면 어쩌지' 걱정했다. 인재진은 "걱정도 자꾸 하다보니 '할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됐다"고 한다.

제1회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은 둘째 날부터 폭우가 내렸다. 밤만 되면 오들오들 떠는 10월의 가평에서 비는 재앙이다. 1999년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도 비에 첫 날 공연만 하고 날아가버렸다. 인재진은 그날만 생각하면 짠하다. "북한강의 수위가 올라가며 자라섬은 점점 물에 잠기고 있었다. 너도나도 언성을 높여 총감독을 찾았고, 배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잠시 그친 비가 셋째 날 오후부터 다시 내렸다. 일부 아티스트가 공연을 강행했다. 인재진은 마지막 공연을 잊지 못한다. "아티스트와 관객들은 비와 하나가 되었다. 한 스태프가 무대 아래서 원형을 그리며 뛰기 시작했고 관객들도 기차 행렬을 만들며 뛰었다. 무대 위 아티스트들도 거기 따라붙었다. 나도 따라 돌았다."

제12회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이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열린다. 자라섬은 유료 공연 말고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많다. 대표적인 게 잔디광장 콘서트다. 오후 12시30분부터 오후 4시45분까지 열리는 이 공연은 돗자리와 유모차를 끌고 소풍을 나온 가족 관객들이 많다. 음악을 들으며 뛰어노는 이 아이들이 미래의 재즈 관객들이 될 것이다. 가평읍사무소 앞, 이화원에서도 무료 공연을 볼 수 있다. 메인 무대를 볼 생각이라면 겨울 옷은 필수다. 앉을 때 엉덩이가 시리지 않게 휴대용 방석 혹은 접이식 의자가 있으면 더 좋다.

인재진은 재즈를 통해 아내도 만났다. 그는 재즈 가수 나윤선의 남편이다.

참고 도서 : 『청춘은 찌글찌글한 축제다』 (인재진 저)

강남통신 김중기 기자 haahaha@joongang.co.kr
사진=자라섬 재즈페스티벌 페이스북, 중앙포토

[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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