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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에 굴복 안 해” 의족 차고 달린 파키스탄 상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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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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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다리에 의족을 차고 육상 100m 경기에 나선 파키스탄의 알리 누르 샤드. [문경=프리랜서 공정식]

“트랙을 달리며 테러리스트와 싸우고 있다.”

5년 전 아프간 국경서 지뢰 밟아
왼발 잃고 의족 스프린터 변신
세계군인체육대회 100m 등 출전
“한반도에 평화 메시지 전하고 싶어”

 전투 중 다리 한 쪽을 잃은 파키스탄 육군 상병 알리 누르 샤드(27)는 자신이 달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알리는 5일 경북 문경의 국군체육부대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5 세계군인체육대회 육상 남자 상이군인 100m 등급A 결승전에 출전했다. 키 1m88㎝의 알리는 전투 중 몸을 다쳐 무릎 아래를 절단한 장애등급 A의 현역 군인이다. 무릎 아래 두 다리를 절단한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8·남아공)처럼 알리도 왼쪽 다리에 의족을 차고 힘껏 트랙을 달렸다. 그는 14초93으로 참가선수 6명 중 4위에 그쳤지만 경기를 마친 뒤 인도·미국 선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우정을 나눴다.

 경기를 마찬 뒤 알리는 5년 전 끔찍했던 악몽을 떠올렸다. 그는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 산악지대에 복무했다. 2010년 1월 인접부대에서 탄약을 받아서 복귀하던 중 급조폭발물(IED)을 밟아 왼 다리를 잃었다. 탈레반으로 추정되는 테러리스트의 소행이었다. 알리는 “지뢰가 터진 뒤 머릿속이 멍해졌지만 세 아들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렸다. 적의 사격을 피해 본능적으로 붕대를 감고 한 다리로 탈출했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다.

 그는 쓰러질지언정 무릎 꿇지 않았다. 10개월간 피나는 재활 끝에 의족을 차고 다시 일어섰다. 아마추어 배우와 크리켓 선수로도 활동했던 알리는 재활을 마친 뒤 파키스탄 육군 스포츠팀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훈련을 거듭한 끝에 지난해 파키스탄 패럴림픽 1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번 대회엔 육상 100m와 200m, 포환 던지기에 출전했다.

 알리는 “억울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지금도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 같은 희생자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난 트랙을 달리며 테러리스트와 싸운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인 한국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5 세계군인체육대회에는 전투에서 몸을 다친 상이군인 51명이 참가했다. 11개국 32명은 육상 종목에, 9개국 19명은 양궁에 출전했다. 그리스 육군 군악대 사령관 시절 수류탄 해체 과정에서 손을 잃은 로마이오스(59)는 양궁에, 페루 육군 특수부대 대위 시절 테러리스트의 폭발물에 의해 왼 다리를 절단한 페리파 코르도바(34)는 100m 달리기에 출전했다. 상이군인 경기는 공식적으로 메달을 집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이군인들은 성적에 상관없이 뛰고, 쏘면서 이번 대회 슬로건인 ‘우정의 어울림, 평화의 두드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4일 여자 상이군인 포환던지기에선 미국 육군병장 엘리자비스 워실(25)과 이탈리아 상병 파비오 세르지티(30)의 특별한 결승전이 열렸다. 왼다리에 의족을 찬 세르지티는 경쟁자가 없어 대회를 포기하려 했다. 이번 대회에는 최소한 2명 이상이 출전해야 경기가 열린다. 주종목이 육상과 수영인 워실은 이 소식을 듣고 생소한 포환던지기에 출전했다.

  문경=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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