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銀 파업] 외국인들 "은행도 파업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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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노조가 18일 전면 파업에 들어갔지만 주가가 오르는 등 금융시장은 차분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은행도 파업을 하느냐"며 의아해 했다.

특히 주인인 정부가 은행을 팔겠다는 데 노조가 이를 막기 위해 파업한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전국 5백99개 점포 중 아예 문을 걸어 잠근 영업점이 전국적으로 1백여곳에 달했고, 문을 연 점포에서도 일손이 부족해 입출금과 송금 등 기본적인 업무 외에 대출.외환 등의 업무가 거의 마비돼 고객들이 심한 불편을 겪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정부의 노조 정책 기조를 분명히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며 정부 대응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대니얼 류 시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 이사는 "정부가 파업 등에 엄중히 대응하고 매각을 계획대로 진행해 나간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새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 변화의 '신호'로 받아들여져 투자 심리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전국 100여 점포 문닫아

증시에서는 조흥은행 노조의 전면 파업에도 18일 대부분 은행주가 강세를 보이는 등 이번 사태가 장기적으로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였다.

조흥은행 주식은 전날보다 1백15원(2.62%) 오른 주당 4천5백5원으로 마감했는데 전문가들은 향후 조흥은행 매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다.

○…수천여명의 조합원이 몰린 조흥은행 본점 건물은 은행장실 입구를 포함해 모든 공간이 노조원들의 임시 숙소로 돌변했다. 곳곳에서 신문지.라면박스를 깔고 잠을 자거나 빵.김밥 등으로 식사를 때우는 노조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본점 영업부의 경우 파업이 시작되면서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모두 닫아 건 채 업무를 전면 중단했다. 본점에 설치된 10여대의 현금 자동입출금기에는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밤샘농성이 이틀째 이어지면서 노조원들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일부 노조원은 삼삼오오 모여 밤새 파업사태의 추이를 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날 오후 9시10분쯤에는 박노산 중부경찰서장이 갑자기 행장실을 방문, 홍석주 행장과 10여분간 만나고 돌아가자 공권력 투입이 논의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기도 했지만 단순한 인사방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 경찰서장 방문에 긴장

은행 측은 이에 앞서 지난 17일 본점 건물에 대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을 했지만 경찰은 이 건물이 시내 중심에 있는 중요시설이라 민생을 교란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경찰 자체 판단만으로도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역삼동 조흥은행 전산센터에는 전경 2백여명이 일반인의 접근을 막고 외곽 경비에 나선 가운데 은행 측은 간부와 관리직 직원 50여명을 동원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박내순 부행장은 "3백여명이 근무하던 평소와 비교해 볼 때 충분한 인원은 아니지만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다"며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외부 인력 지원 문제는 금감원이 결정하는 대로 따를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지점에서는 지점장까지 나와 창구 업무를 도왔지만 대부분이 계열직 직원인 7명의 인력으로 기본적인 입출금 외의 정상적인 업무 처리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창구가 두곳밖에 열리지 않아 하루종일 고객들은 30분 이상씩 기다려야 했다. 파업 소식에 불안감을 느낀 일부 고객은 큰 봉투를 가져와 통장에 있던 수천만원을 모두 현금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대기순번표를 뽑고 40분째 기다리고 있던 장원석(35.사업)씨도 "파업일이 25일이라고 해 그때쯤 계좌를 모두 옮겨 놓으려고 했는데 갑작스레 파업이 시작돼 오늘 부리나케 돈을 찾으러 왔다"고 말했다.

*** 문 연 영업점도 업무 마비

○…기업 고객이 많아 주로 대출.외환 업무 등이 이뤄지는 종로의 한 지점에서는 계약직 직원이 본점에 전화를 걸어 일일이 물어가며 업무처리를 하는 모습이었다. 소규모 출장소들의 경우엔 아예 문을 열지 않은 곳도 있었다.

인천공항 영업점은 은행 측이 파업에 대비해 중점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거점 점포인데도 직원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영업점장과 계약직 직원 한두명만 남는 바람에 업무가 거의 마비됐다.

한 고객은 "동수원 지점과 거래하는데 신용장을 발급해주지 않아 여기까지 왔는데 역시 안된다고 해 항의했더니 광화문 지점에 가보라고만 한다"며 "당장 무역거래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발을 굴렀다.

○…금융감독원은 조흥노조가 파업 시기를 대폭 앞당기자 이날부터 실무 부서인 은행검사1국을 통해 비상대책반을 가동하는 등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몇 차례의 금융권 파업 과정에서 실제로 영업이 중지된 사태가 없었던 만큼 이번에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진표 재정경제부 장관은 파업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전 민주당의 바른정치모임 소속 의원들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관련 부처 장관이 파업에 아랑곳없이 예정된 모임에 참석하자 일부에서는 바른정치모임이 신기남.정동영 등 친노(親盧)성향의 당내 쇄신파 의원들이 주도하는 점을 지적, 金부총리가 급박한 상황 속에서 정치권만 의식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경제부.사회부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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