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석 동아출판 대표 "창의 인재 키우려면 과도한 학습 부담 덜어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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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70주년 맞은 동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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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기자

미래 설계 없이 대학만 바라보는 게 문제
학생들이 꿈 좇을 수 있는 여유 되찾아줘야
출판계 역할은 재밌는 수업콘텐트 개발

1945년 해방 직후 설립된 동아출판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국내 최고(最古)의 교육 전문 출판사로서 45년 최초의 국어 교과서인 『신생국어독본』을 출간했다. 53년엔 『동아전과』, 84년엔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을 출판하며 한국 교육 출판계를 이끌었다.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동아출판의 이재석 대표(사진)를 만났다.

-동아출판이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동아출판은 최초의 국어 교과서를 출판하며 해방 직후 국어 교육의 토대를 마련했고, 53년 출간한 『동아전과』는 지금까지도 전과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스테디셀러다. 동아출판이 내놓은 교과서와 참고서는 서민들의 배움에 대한 애환을 해소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동아출판이 한국 교육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자부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대한민국에게 특별한 해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전환점이다. 교육분야도 지난 시대 성과와 한계를 면밀하게 평가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난 시대 평가가 우선일 듯하다.

“산업화 초기 성장 전략은 ‘따라잡기 전략’이었다. 90년대까지 한국 산업은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가격 경쟁력이 중요했다. 그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주어진 목표를 효과적으로, 빠르게 수행할 수 있는 ‘속도’였다. 새로운 분야를 발굴하는 창의성보다 지식의 양이 중요했다. 세계의 앞선 기술을 이해하고, 그것을 더 저렴한 공정으로, 더 빠르게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시대 필요한 교육은 ‘지식 암기’와 ‘경쟁’이다.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당시 산업이 필요로 했던 고급 인력을 적절하게 공급했다. 지난 시기 교육이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부분도 분명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이 병폐로 드러난 부분도 있지 않나.

“그렇다. 대학이 유일한 목표가 돼버린 것이 문제다. 80%에 가까운 대학 진학률은 과잉 경쟁을 그대로 드러낸다. 사회와 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은 변하는데, 교육계가 그 속도를 못 따라간 것이 문제다. 사회는 창의력과 융합력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는데 교육은 여전히 지식을 암기하는 데만 중점을 둔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수학을 논리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기초학문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문제를 푸는 능력에만 초점을 뒀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수학을 재미있고 쉽게 접근하자는 변화는 긍정적이라고 본다.”

-교육 현장이 변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미 많은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교과 통합형 수업, 문·이과 통합 교육, 진로·창의 교육, 스마트 교실 등 과거 지식 암기형 교육에서 창의·융합형 교육을 위한 많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이런 변화가 성공하기 위해선 결국 콘텐트가 중요하다. 단지 새로운 교습 방법의 도입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교육의 내용, 즉 교과서와 참고서가 함께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창의적인 인재는 공부와 생활의 적절한 균형이 뒷받침돼야 한다.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꿈을 좇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목표가 뚜렷해지면 공부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학생들이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선 우선 과도한 학습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교과서·참고서의 학습량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외워야 할 지식을 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탐구 활동과 토론·토의 주제를 풍부하게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동아출판의 교재 개발도 이런 방향에 맞추고 있다. 하루 15~30분만 공부하면 교과서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차이를 만드는 시간』이라든가 다양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수학·과학 융합 주제를 풀어낸 『틈만 나면 보고 싶은 융합 과학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단지 교과서와 참고서만 바뀐다고 창의 교육이 가능할까.

“이 부분에서 교육 출판계의 또 다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 현장의 변화를 끌어내는 주체는 교사다. 교사의 변화를 도와야 한다. 수업이 재미있어야 학생들의 참여도 유도할 수 있다. 스마트·디지털 교육의 보급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동아출판은 이미 2012년부터 스마트교실 수업을 위한 멀티미디어 수업지원 시스템인 ‘두클래스’(DoUclass)를 운영하고 있다. 초·중·고 교사들에게 동영상·음악 등 보충수업자료는 물론 수십만 개의 문제를 보유한 문제은행, 창의·인성·진로 교육에 필요한 멀티미디어 자료 등 방대한 수업자료를 제공한다. 앞으로 이런 교사 수업지원 시스템을 더 강화하고, 제공하는 보충자료의 범위도 크게 넓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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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부터 출판된 `동아전과`는 지금도 전과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초등참고서의 스테디셀러다.

- 교육 출판계의 자체 역량 강화도 필요할 것 같다.

“그렇다. 교육 출판계는 창의 교육이 안착할 수 있도록 양질의 콘텐트를 연구·개발하는 데 지금보다 투자를 늘려야 한다. 동아출판이 창립 70주년을 맞아 발표한 ‘내일의 꿈을 만들어가는 교육 문화 1등 기업’이라는 미래 비전엔 이런 의지를 담았다. 새로운 교과서 개발의 방향을 제시하고 학생들의 학습 부담은 줄여주면서 교과서 속 핵심 개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참고서의 보급에 힘쓸 계획이다. 이를 위해 우수한 연구진을 확보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미 동아출판의 연구·편집 인력의 30%는 교사 자격증을 보유한 교육 전문가다. 이런 우수한 연구 인력의 확보 여부가 앞으로 교육 출판계의 발전에 큰 힘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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