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7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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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금련이 간신히 마음을 추슬러 일어나 침상으로 다가갔다. 이불은 여전히 무대를 덮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무대가 죽었는지는 아직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금련이 떨리는 손을 뻗어 이불을 무대 머리 쪽부터 젖혀보았다.

"아이쿠!"

하마터면 금련이 크게 비명을 지를 뻔하였다. 죽은 줄 알았던 무대가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눈동자에는 온통 핏발이 서 있고 눈가로는 피가 흘러나오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무대가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기도 하였다.

'네 이년, 네가 나를 죽여!'

무대가 피로 범벅된 두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치면서 금방이라도 벌떡 몸을 솟구칠 것만 같았다. 두 다리마저 떨리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아가며 금련이 이불을 좀 더 젖혀나갔다. 귀와 코가 서서히 드러나고 인중과 입, 턱이 드러났다. 그런데 두 귓구멍과 두 콧구멍, 입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상과 같은 독약을 먹으면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오며 죽게 된다는 왕노파의 말이 그제서야 생각났다. 그 피를 닦기 위해서 수건을 솥물에 끓여놓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금련은 부엌에서 가지고 온 수건으로 무대의 얼굴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연신 닦아내었다. 그러나 이불이나 침상을 적실 정도로 그렇게 흥건히 흘러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지나자 흘러나오던 피가 멈췄다.

"이게 무슨 냄새지?"

이번에는 지독한 구린내가 풍기기 시작했다. 금련은 무대의 창자가 비상으로 인하여 타들어가는 냄새인가 싶었으나, 잠시 후 그것은 무대의 항문 쪽에서 풍기는 냄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금련은 피를 닦은 수건으로 무대의 엉덩이에 범벅이 되어 있는 새까만 대변을 훔쳐내었다. 금련은 그 대변 냄새로 질식하여 쓰러질 것만 같았다.

대변까지 치우고 나서 금련이 무대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손으로 눈꺼풀을 쓸어내려 주었으나 희한하게도 무대의 눈꺼풀은 도로 올라오고 말았다. 그래서 금련은 무대가 정말 죽은 것인지 의심이 또 들었다. 금방이라도 무대가 팔을 뻗어 금련의 머리채를 잡아채며, 네 이년, 하고 고함을 질러댈 것만 같았다.

금련이 이불과 침상을 살피니 피가 묻은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렇게 심한 것이 아니어서 무대가 기침을 하다가 피를 토한 것으로 여겨질 만도 하였다. 그러나 무대의 시신을 피와 대변으로 얼룩진 침상에 그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었다. 시신을 아래층으로 옮겨 물로 깨끗이 씻고 일단 간단히라도 염을 해두어야 하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가 금련은 자신이 깜빡 까먹고 있는 일이 있음을 알아챘다. 그것은 무대의 죽음을 영아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시신을 옮기는 것은 그 이후에 할 일이었다. 금련은 급히 머리를 풀고 층계를 달려 내려가며 큰소리로 곡을 해대었다.

"아이고우, 아이고우, 영아야, 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기침을 하고 배앓이를 하다가 피까지 흘리고 돌아가셨다! 아이고우, 영아야, 이제 우린 어떻게 사니!"

영아가 뒤뜰 화단에 물을 주다가 화들짝 놀라서 달려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다니요? 아이고우, 이 일을 어떡해? 불쌍한 우리 아버지!"

영아가 곡을 하며 위층으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올라갔다. 금련은 아래층 바닥에 주저앉아 곡을 하는 척하였지만, 위층으로 올라간 영아가 독살의 기미 같은 것을 눈치채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울면서 다시 내려온 영아를 보니 그런 것을 알아챈 것 같지는 않았다. 영아가 그런 내색을 비췄다면 영아의 입에도 비상이 언제 들어갈지 몰랐다.

영아는 금련을 끌어안고 또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금련도 함께 온 힘을 다해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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