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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중국 경제의 짐이 된 국유기업, 개혁으로 승부수 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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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승부수를 던졌다. 중국 경제의 활력을 깎아 내린 주범으로 꼽히는 국유기업 개혁의 처방전을 내놓은 것이다. 그 속엔 국유기업에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혼합소유제’ 등 과감한 내용이 담겼다. 14일 ‘국유기업 개혁 심화에 관한 지도의견’을 발표한 기자회견장에는 중국 거시경제의 사령탑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와 재정부 등 5개부처의 차관들이 총출동했다. ‘지도의견’은 정식 법령으로 공포돼 각급 기관과 지방 정부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다. 앞으로 5년안에 시행한다는 시한도 정했다.

개혁안의 골자는 ▶혼합소유제 ▶대폭적인 인수·합병 ▶전면적인 상장 추진 등이다. 롄웨이량(連維良) 발개위 부주임(차관)은 이날 회견에서 “석유·전력·철도·통신·자원개발 등 진입장벽이 높은 영역에도 비국유 자본을 끌어들이겠다”고 밝혔다. 경쟁원리와 민간의 효율성, 창의성을 국유기업에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전면적인 민영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그 의미가 작지 않다.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은 모든 기업이 국유ㆍ국영이었으며 시장경제를 도입한 이후에도 에너지·인프라·금융 등 기간 산업에서 외식·소비재 업체에 이르는 광범한 분야에 수많은 국유기업이 존재한다.

혼합소유의 우선 대상으로는 중국석유화학(시노펙)과 중국석유화학천연가스(페트로차이나)가 꼽힌다. 시노펙의 경우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 사업과 석유제품 판매 등을 독립시켜 최대 30%의 민간자본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밖에 식품업체인 중량(中糧)그룹, 환경기술업체인 중국에너지환경보호그룹 등 6개사가 이미 민간자본 도입업체로 선정된 상태다.

인수·합병을 통한 구조조정도 추진된다. 약 11만 개의 국유기업 중 대부분은 지방정부 관할이고 112개 업체만 중앙정부가 운영한다. 이 112개사를 약 40개로 재편한다는 게 정부 목표다. 합병은 이미 시작된 상태다. 지난해 철도차량 생산업체인 남차(南車)와 북차(北車)가 중차(中車)로 통합됐고, 중국원양운수(코스코)등 해운업체도 하나로 합쳐질 예정이다. 철도시설 업체인 중국중철과 중철이국은 합병을 위해 14일 증시 거래가 중지됐다.

국유기업의 상장도 대폭 확대된다. 주룽지(朱鎔基) 총리 시절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준비의 일환으로 주요 국유기업들이 상장 대열에 합류했지만, 대부분 우량자산만 골라 상장하는 부분상장이었다. 이번엔 동일 기업집단 전체의 상장을 촉진시켜 자본조달의 효율성과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개혁안을 내놓은 바탕에는 국유기업의 비효율과 부실ㆍ부패를 털어내지 못하면 중국 경제의 개혁은 없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국유기업들은 정부 지원과 특혜 금융으로 자금력을 키워 한 때 중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 중국 정부가 4조 위안(당시 환율로 약 680 조원)을 쏟아부어 경기 부양에 성공한 것도 이들 국유기업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공룡처럼 불어난 덩치는 비효율의 원인이 됐고 금융 특혜는 과도한 채무로 이어졌다. 수익의 10%를 정부 관리 등에 대한 접대비로 소진하는 도덕적 해이도 문제가 됐다. 결국 올 7월까지 중국의 민간기업은 매출과 순익이 각각 전년대비 5.2%와 6.5% 증가한 데 반해 국유기업은 7.5%와 22.1%가 감소하는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시 주석이 국유기업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확정한 건 2013년 공산당 3중전회 때였다. ‘지도의견’ 확정에 시간이 걸린 건 보수 세력의 상당한 반발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시 주석은 석유방 대표주자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 등 국유기업과 연계된 세력을 처벌하는 반부패 캠페인을 통해 반발을 제압했다.

‘지도의견’ 속에는 국유기업 내 공산당 조직의 지위를 법제화한다는 등 공산당의 통제 강화로 이어지는 내용도 포함됐다. 시장경제의 요소를 대폭 도입했음에도 완전한 자유화에는 미치지 못하는 근본적 한계다. 그래서인지 14일 상하이 주식시장은 3% 가까이 떨어진 채 폐장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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