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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칼럼] 고독을 친구로 만드는 '고독력'을 길러라

중앙일보

입력

서명수 객원기자

고독을 친구로 만드는 '고독력'을 길러라

60대 중반의 A씨. 지난 해까지만 해도 번듯한 회사의 임원이었지만 올 초 퇴직해 본격적인 은퇴생활에 들어섰다. 재정적으로 어렵지 않게 살만한 재산은 모아놓았다. 그러나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거릴 수 없어 재취업 자리를 알아봤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재취업을 포기하고 이제부터는 친구나 이웃과 사귀며 소박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직장생활만 열심히했지 직장 밖에서의 관계를 소홀히 해와 어울릴만한 친구와 이웃이 많지 않다. 갈수록 외로움을 탈 것 같아 걱정이다. 그에겐 돈보다 노후의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가장 큰 과제다.

은퇴후 찾아오는 변화 중 하나는 혼자 남아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물론 전적으로 외톨이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은퇴를 하면 직장동료나 사회에서 인연을 맺은 지인과 멀어지는 가운데 친구나 가족들과의 관계는 계속 이어지지만 교류의 범위는 갈수록 좁아진다. 특히 현역 때 고위직에 오른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심하게 탄다고 한다. 사소한 일도 처리해 주던 부하직원의 부재는 한동안 금단증세를 일으킨다. 어쨌거나 은퇴자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은 혼자다. 하루가 멀다 않고 친구를 만나도, 부지런히 뭔가를 배우려고 쫓아다녀도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자식들이 결혼해 독립하고, 배우자와 헤어지기라도 하면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다.

은퇴자의 공공의 적 '외로움'

예비 은퇴자들도 외로움을 은퇴의 공적으로 꼽는다. 몇년전 한 외국계 은행이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영국·일본·홍콩 등 전세계 21개국 성인남녀 2만2000명과 고용주 6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은퇴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꼽으라는 질문에 우리나라는 외로움(53%), 자유 (50%), 두려움 (48%) 등을 든 반면 나머지 국가의 응답자들은 자유(69%), 행복(61%), 만족(61%) 등을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노후의 고독을 다른 무엇보다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이야기다. 평소 부지런히 경조사를 쫓아다니고, 퇴근후 술자리에 자주 어울리며, 어떻게 해서든지 모임을 엮으려고 한다는 사실은 고독을 떨쳐내려는 몸부림이다. 어쩌면 한국은 외로워서는 안되는 사회라고 할 만 하다. 그러니 노후의 외로움을 마주하길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은퇴전문가들은 건강한 노년의 삶은 육체적·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사회적 건강을 챙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세계적으로 기대수명이 긴 장수를 누리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기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장수하는 삶을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여길 정도로 불안하게 노년을 바라보는 실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행복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OECD 전체 36개 국가 중에서 27위에 머물고 있다. OECD의 행복지수는 주거·소득·고용·공동체·교육·환경·일 등 10여 개의 평가항목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낮은 평가 점수를 얻은 항목은 바로 ‘공동체’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은 타인과 교류 빈도가 매우 낮으며,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퇴직 후 사람관계를 가장 어려워 한다. 일종의 자격지심 때문이다. 점점 전화오는 횟수가 줄면서 외로움속에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영위하면서 누렸던 인간관계가 서서히 쪼그라들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도 잘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싫은 사람과도 만나고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도 적당히 즐길줄 알아야 한다. 공동체적 삶이란 그런 것이다.

고독력을 키워주는 취미 활동

인간관계를 무짜르듯 완전히 끊고 살 생각을 지닌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주변에 나를 끔찍히 여기는 선후배와 동창생을 포함해 지인,이웃,친인척을 알뜰살뜰 챙겨가면서 사람들과의 공백을 메워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제아무리 꼴보기 싫은 사람도 시간이 제법 흘러가면 용서의 구간을 통과하면서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돈벌이가 됐던, 건강을 지켜주는 취미가 됐던,아님 활력을 불러 일으켜 주는 일이 됐건 사람을 사귀고 함께 동행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투자다.

하지만 아무리 환경이 만들어지고 스스로 노력한다 해도 은퇴자들이 외로움이란 장벽을 뛰어 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젊을 때엔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가 많기에 외로움을 느끼고 말고 할 것도 없으나 나이를 먹으면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고 있는 친구마저도 이런 저런 이유로 소원해지기 십상이다. 남이 찾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외로움을 자초하기도 한다. 그 외로움을 친구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바로 '고독력'이다. 고독력은 은퇴후 사망할 때까지 약 8만 시간이란 바다를 헤엄쳐 나가는 데 필요한 삶의 기술이다. 언젠가는 모두가 '싱글'이 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습득해야 할 필수과목이기도 하다. 고독력은 한마디로 고독을 이겨내는 힘이다. 외따로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고독사에 이른 사람 중엔 고독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혼자 있더라도 취미를 즐기면서 새로운 유대관계를 만드는 것이 고독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취미는 사진찍기, 글쓰기, 그림그리기, 악기다루기 같은 창의적 예술활동이 좋다. 이런 유대관계는 외로움을 행복으로 만드는 디딤돌이 된다.

서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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