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대 기자의 퇴근 후에] 소년, 신에게 광기를 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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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에쿠우스'

알런 스트랑 역의 남윤호 [사진 코르코르디움]
알런(남윤호 분·왼쪽)과 마틴 다이사트(김태훈 분). [사진 코르코르디움]

“그대, 신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열일곱 소년 알런 스트랑(남윤호 분)은 한마디 외침과 함께 손에 든 쇠꼬챙이로 말 여덟 마리의 눈을 찌른다. 그 순간 무대는 핏빛으로 물든다. 소년의 눈에는 핏발 선 광기가 스며든다.

알런에게 에쿠우스는 신이었다. 에쿠우스는 라틴어로 말을 뜻한다. 소년에게 말은 동물 그 이상의 존재다. 연극 ‘에쿠우스’는 소년이 말의 눈을 찌른 이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극 중에서 에쿠우스는 소년이 자유를 펼치는 통로다. 그러나 떨쳐내고 싶어도 떨쳐내지지 않는 족쇄 같은 존재기도 하다. 알런이 에쿠우스들과 벌판을 달리는 장면과 에쿠우스의 눈을 찌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두 장면은 알런의 흥분과 광기, 에쿠우스의 몸짓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동성과 강인함으로 무대가 가득 찬다. 나체에 가까운 배우들의 모습이 본능의 날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 에쿠우스는 ‘19금’ 공연으로 알런의 전라 연기가 매우 강렬했다. 올해, 남윤호에게서 그 못지 않은 강렬함과 소년의 순수함이 엿보인다. 본능의 자유와 사회의 억압 사이에서 고뇌하는 마틴 다이사트(김태훈 분) 연기는 안정감이 돋보인다.

연극 에쿠우스는 극단 실험극장이 1975년 한국 초연을 한 작품이다. 올해 40주년을 맞았다. 그 시간 동안 강태기·최재성·최민식 등이 알런을, 김동훈·박정자·남명렬 등이 다이사트 역을 맡았다. 조재현·송승환은 알런과 다이사트 역을 모두 맡기도 했다. 에쿠우스는 연기파 배우들이 탐내는 무대다. 알런을 맡은 배우가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기대감이 생기는 건 이 작품이 지닌 분명한 매력이다. 정말 다르니까.

11월 1일까지 흥인동 충무아트홀 블랙에서, 문의 02-889-3561.

강남통신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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