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됫병 소주’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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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소주의 변신은 어디까지일까? 1924년에 나온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35도였다. ‘소주=25도’가 공식처럼 굳어진 것은 70년대 이후다. 1.8L짜리 ‘댓병 소주’도 부어라 마셔라 하던 때였다. 소주의 도수 20도가 깨진 것도 벌써 9년 전. 순한 소주 전성시대를 넘어 올 들어선 소주 맛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17도마저 허문 과일소주 등 저도주가 인기다.

 술과 관련된 일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댓병 소주’는 잘못된 말이다. ‘됫병 소주’라고 해야 바르다. “그때는 삼삼오오 모여 대병 소주를 놓고 정치문제를 안주 삼아 한탄하던 시대였다”와 같이 사용해서도 안 된다. 큰 병(大甁)을 뜻하는 말로 생각해 ‘대병 소주’라고 하기 쉽지만 ‘됫병 소주’로 바루어야 한다. ‘됫병’은 한 되를 담을 수 있는 분량의 병을 말한다. ‘되’는 부피를 재는 단위다. 한 되는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8L가량 된다.

 술을 마시면서 안주를 곁들일 때도 잘못 쓰기 쉬운 말이 있다. “감자탕 대자를 시키면 네댓 명은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식사도 할 거니까 탕수육은 중자 말고 소자로 시키자”처럼 사용하지만 ‘대자’ ‘중자’ ‘소자’는 옳은 표현이 아니다. ‘대짜’ ‘중짜’ ‘소짜’로 고쳐야 한다. 큰 것, 중간인 것, 작은 것을 가리키는 말은 ‘대짜’ ‘중짜’ ‘소짜’다. 대(大)·중(中)·소(小)에 ‘-자’가 아니라 ‘-짜’가 붙은 말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 ‘-자’의 어원이 불분명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원이 분명치 않은 말은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규정에 따른 것이다.

 어떤 물건의 크고 작음을 일컬을 경우엔 대·중·소에 ‘-짜’가 붙지만 글자 크기를 나타낼 때는 ‘-자’가 붙는다. 큰 글자는 ‘대자(大字)’, 작은 글자는 ‘소자(小字)’로 표기한다. 이들 단어는 그 어원이 분명하므로 소리 나는 대로 적지 않고 한자음을 밝혀 쓴 것이다. ‘대자’는 ‘대자로’ 꼴로 주로 쓰여 한자 ‘大’자와 같이 팔과 다리를 양쪽으로 크게 벌린 모양을 이르기도 한다. “그렇게 술을 들이켜니 대자로 뻗지!”처럼 사용한다. 이를 ‘대짜로 뻗지’라고 적으면 안 된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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