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좋은 구경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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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최근 책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인쇄 넘어가기 전이라 혹여나 실수가 나오지 않을까 예민해 있을 때다. 띄어쓰기 하나에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검토 과정에서 “덕분에 좋은 구경했습니다”는 문장이 발견됐다. 원래 “덕분에 좋은 구경 했습니다”로 띄어쓰기가 돼 있던 것을 누군가 그리 고쳐 놓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출판사에 물어보니 사전에 그렇게 돼 있어 고쳤다는 것이다. 사전에 맞춰 놓아야지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고 했다. 나는 사전이 잘못된 것이니 얼른 다시 고쳐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출판사는 자기네도 “좋은 구경 했습니다”로 띄어쓰기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사전에 “좋은 구경했습니다”로 나와 있으니 그냥 가는 게 어떠냐고 했다.

  끝내 못 내켜 하길래 조만간 ‘우리말 바루기’에서 다룰 테니 걱정하지 말고 고쳐 달라고 설득해 겨우 수정한 뒤 인쇄할 수 있었다.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네이버 사전에 문제가 있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띄어쓰기가 제대로 돼 있는데 네이버 사전에 ‘덕분’이란 단어를 설명하면서 예문으로 “덕분에 좋은 구경했습니다”가 나와 있어 출판사 측이 이를 보고 얘기한 것이었다.

 “좋은 구경 했습니다”는 관형어인 ‘좋은’이 명사인 ‘구경’을 수식하는 구조여서 명사구인 ‘좋은 구경’과 동사인 ‘했습니다’로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구경 했습니다”로 ‘구경’과 ‘했습니다’를 반드시 띄어야 한다. “좋은 구경했습니다”로 하면 ‘좋은’이라는 관형어가 동사인 ‘구경했습니다’를 수식하는 구조여서 성립하지 않는다. 관형어는 체언(명사·대명사·수사)을 수식하지 동사를 수식하지는 못한다.

 “내가 아니면 새로운 선택해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이란 관형어가 ‘선택’을 수식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선택 해야’로 띄어쓰기를 해야 한다. ‘새로운 선택을 해야’에서 ‘을’이 생략된 구조라고 생각하면 띄어 써야 하는 이유가 좀 더 분명해진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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