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 간직하는 건축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시간의 흔적과 건축, 자연이 함께 녹아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건축과 조경작업의 경계가 모호하도록 계획했다." 한강 선유도공원 설계로 지난 14일 제14회 김수근문화상을 수상한 조성룡(59.사진) 도시건축연구소 대표의 말이다.

선유도공원은 1975년부터 수돗물 공급을 위해 한강물을 정수하던 한강 정수장이다. 서울시는 정수장 기능이 없어진 선유도를 지난해 월드컵에 맞추어 공원으로 바꾸었다. 설계는 조성룡 대표가 맡고 조경은 정영선 서안 대표가 주도했다.

조대표는 "선유도가 정수장의 기능을 가졌던 것을 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콘크리트 기둥 등 건물의 흔적을 유지한 채 최소한의 시설물을 덧붙였다"고 밝힌다. "좋은 건축이나 조경은 가능하면 많은 공간을 비워둔 채, 필요한 기능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이를 위해 조대표는 어떻게 하면 '가장 적게, 최소한의 규모로 설계할까'를 고민했다.

선유도공원은 우리나라 시골길에서 흔히 보는 포플라 나무와 들풀들로 꾸며졌다. 또 정수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한강 전시관의 지하층에는 수돗물을 공급하던 정수펌프 기계가 그대로 보존, 전시돼 있다.

조대표는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도시개발이 아닌 시간의 흔적을 공유하면서,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고, 또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시골의 모습을 되살리게 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정수장에 물을 모아두던 웅덩이를 연꽃 등 수생식물들이 자라는 연못으로 만든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또 공원의 산책로는 수돗물 공급을 위해 물이 흐르던 물길을 이용했다. 물길을 사람길로 바꾼 셈이다. 김수근 문화상 심사에서 "선유도공원은 새로운 환경디자인의 협주법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한 것은 이 같은 의도를 잘 읽은 것으로 보인다.

신혜경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