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란의 기적 … 8000여 난민 독일 품에 안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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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현지시간) 오후 독일 뮌헨역에 난민을 실은 특별열차가 멈춰섰다.

 열차에서 내린 이들의 얼굴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독일 땅에 도착한 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굳은 얼굴은 금세 미소로 바뀌었다. 플랫폼에는 뮌헨 시민들의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영어와 독일어, 아랍어로 ‘환영합니다’고 적은 팻말을 보고 난민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안도하는 난민들에게 음식과 물을 나눠줬다.

 두 아이와 함께 한 달 반 여정 끝에 도착한 이라크 쿠드르족 여인은 서툰 영어로 “생큐, 저머니(고마워요, 독일)”라고 말했다. 난민들은 종이박스를 찢어 ‘사랑해요, 독일’ ‘독일 감사합니다’고 적어 화답했다.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처참한 주검 앞에 전 세계가 문을 열었다. 물리적인 국경의 문과 함께 닫혔던 마음의 문도 열렸다.

 6일 오전까지 헝가리를 출발한 8000여 명의 난민이 독일에 도착했다. 대부분 내전으로 고통받는 시리아와 이라크 등 중동지역 출신들이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 가까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난민들이 독일·오스트리아로 몰려들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베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총리는 헝가리를 통해 들어오는 난민들을 제한 없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국경 개방이 더블린 조약(난민들이 첫 도착 국가에서 망명신청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의 예외적 상황이라고 밝혔다.

 난민 수용에 소극적이던 영국도 문을 열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 일요판 더 선데이타임스는 6일 “영국 정부가 당초 계획보다 늘려 1만5000명의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바다나 육로를 통해 난민들이 넘어오는 것이 위험해 시리아 국경 난민캠프에 있는 난민 수천 명을 직접 데려오겠다”고 했다.

 핀란드의 백만장자 총리는 자신의 집을 난민들에게 내주겠다고 밝혔다. AP통신과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정보기술(IT) 기업인 출신인 유하 시필레 핀란드 총리는 핀란드 중부 킴페레에 있는 자신의 집을 내년 1월부터 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겠다고 말했다. 시필레 총리는 핀란드 방송 MTV와의 인터뷰에서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인종 혐오 발언을 멈추고 난민들이 핀란드에서 환영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통신재벌 나구이브 사위리스는 지중해 섬을 사들여 ‘난민을 위한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사위리스는 6일 자신의 트위터에 “그리스나 이탈리아 정부가 지중해 섬을 자신에게 팔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섬에 수천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난민에게 직업도 제공하겠다. 궁극적으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유럽 국가들이 난민 문제 해결에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정작 같은 지역에 있는 중동의 부자나라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5일 ‘아랍 부국(富國)들은 시리아 난민 사태 해결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인터내셔널(AI)이 카타르·UAE·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오만 등 걸프지역 부자나라들은 시리아 난민들에게 어떤 피신처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인권감시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케네스 로스 국장도 자신의 트위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걸프 국가들이 시리아 난민을 몇 명이나 받아들일 것 같으냐?”고 적었다. 난민들에게 빗장을 닫아걸고 있는 중동 부자나라들을 비난한 것이다.

 WP는 “걸프 지역 부국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병력과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면서도 이민자 문제에 대해선 외면하고 있으며 시리아 분쟁에 대한 도의적 책임조차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섬에서 2개월 된 영아 또 익사=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스 언론들은 5일 오전 에게 해에 인접한 그리스 아가토니시 섬에서 2개월 된 시리아 난민 영아가 익사했다고 보도했다. 터키 서부 아이든 주 해안에서 출발한 난민여성은 물에 빠진 아들을 경찰서로 데려와 도움을 청했고, 의료진이 없던 섬 당국이 인근 사모스 섬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졌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유럽으로 가기 위해 지중해를 건너다 숨진 난민 시신 중 3분의 2는 신원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다. 프랑크 라츠코 IOM 국제이주데이터분석센터 대표는 “실종난민 정보를 담은 데이터베이스를 유럽 전역이 공유하고 각국 정부가 발견된 시신에 대한 세부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한 난민 가운데 2800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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