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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7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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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금련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큰 솥을 얹고 물을 붓고는 수건도 한 장 집어넣어 함께 끓였다. 그러고는 보약 꾸러미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의원이 그러는데 이 약은 자정에 먹어야 효과가 있대요. 약을 먹고 두꺼운 이불을 겹으로 푹 뒤집어쓰고 땀을 내고 나면 다음날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대요."

"자정에 먹어야 한다면 당신 약 닳이느라 잠도 잘 못 자겠소."

"그만한 수고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죠. 당신만 완쾌되어 일어난다면야. 난 지금부터 약을 달여야겠어요. 당신은 잠이 오면 눈을 좀 붙이고 있어요."

무대의 이불을 다독거려주고는 금련이 보약 꾸러미를 들고 다시 부엌으로 내려갔다. 탕관에 약을 넣고 끓이고 있으니 자정을 알리는 북소리가 현청 쪽에서 들려왔다. 그때 문득 금련은 무대를 꼭 죽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무대의 성격을 잘 아는 금련으로서는 무대가 자기를 이미 용서하였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마음을 잡고 무대의 아내로서 충실하게 살아가면 더 이상 불상사는 생기지 않을 것이었다. 서문경이 무대에게 충분히 보상을 해주기만 하면 시동생 무송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무대가 고자질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사람을, 그것도 남편을 죽인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데 이전처럼 평범한 아낙네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금련은 서문경에 대한 미련을 버릴 자신이 없었다. 꾀죄죄한 무대하고 살아보았자 장래가 빤한 것이 아닌가. 서문경의 부인이 되는 일은 일생에 두번 다시 찾아오기 힘든 행운인 셈이었다. 서문경의 부인이 되면 금련 자신이 호강할 뿐만 아니라 아직도 가난 속에 허덕이는 금련의 친정 식구들도 호강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서문경이 금련에게 안겨주는 육체의 쾌락은 무대 같은 남자 열 명이 있어도 안겨줄 수 없는 경이로운 환희였다. 금련은 정말이지 이제야 비로소 성과 육체에 대해 눈을 뜬 기분이었다. 그 눈을 다시 감으라고 하는 것은 무자비한 주문이요, 있을 수도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서문경이 안겨주는 쾌락을 포기하는 것은 금련에게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자신의 죽음을 대신할 또 다른 죽음이 요구되었다.

금련은 탕관을 기울여 삼베에 약을 부어 맑은 액을 따로 걸러내었다. 삼베에 가득 쌓인 약초들을 짜서 약물을 더 받아내는 수고는 일부러 할 필요가 없었다. 금련은 머리에서 은비녀를 뽑아내어 한쪽 꼭대기에 꿀을 바르고 거기에 나무젓가락을 사용하여 조심조심 비상가루를 묻혔다. 손에 조금이라도 비상가루가 묻어서는 금련이 먼저 급사할지도 몰랐다.

금련은 한 손에는 약물이 담긴 사발그릇을 들고 한 손에는 은비녀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무대를 깨어 일으켜 앉힌 금련은 비상가루가 묻은 은비녀 한쪽 끝을 조심스레 감싸쥐고 비상가루가 묻지 않은 은비녀 부분을 약물에 넣어 저어주었다. 무대는 빙글빙글 돌고 있는 은비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금련이 약물을 다 젓고는 은비녀 끝을 살짝 들어올려 무대 눈앞으로 가져갔다.

"보셨죠?"

무대가 무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비녀 색깔이 변하지 않은 것은 약물에 독 같은 것이 들어있지 않다는 증거였다.

"아직도 날 의심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보여주는 거예요. 이제 안심하고 드세요."

"여보, 미안하오. 이제 당신을 정말 믿겠소. 약 가지고 오시오."

그때 금련이 은비녀 방향을 슬쩍 바꾸어 비상가루가 묻어 있는 부분으로 약물을 한 번 더 젓고는 재빨리 사발그릇을 무대에게 내밀었다. 무대가 그릇을 손에 들 힘이 없다는 듯 팔을 올리려고 하다가 아래로 떨어뜨렸다. 금련은 은비녀를 얼른 다시 머리에 꽂고는 무대의 상체를 뒤에서 부축하여 약물을 마시게 하였다. 무대는 아무 의심 없이 약물을 한모금씩 들이켰다. 금련의 머리에 꽂힌 은비녀 한쪽 끝은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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