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목요일] 3500자 승부처 자소서 … 돈 들여 첨삭·대필? 티 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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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숭실대에서 열린 ‘자기소개서 작성’ 설명회. [김성룡 기자]

서울 동명여고 3학년 한정윤양은 지난달 23일 서울교육청이 주최한 ‘자기소개서 설명회’에 엄마와 함께 왔다. “수시를 앞두고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데, 어떤 내용을 어떻게 구성해 작성해야 하는지 너무 궁금해요. 주위에서 ‘돈 주고 자소서 첨삭을 받았다, 얼마를 내니 대필해 주더라’ 하는 얘기도 들었어요. 자소서는 원래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는 거잖아요. 그런 데까지 돈을 들여야 되나 싶어요.”

 정윤양은 설명회가 시작되자 고개를 들고 대입 전문가들의 설명을 경청했다. 이날 설명회엔 수험생과 학부모 등 1200여 명이 모였다. 서울교육청이 ‘자기소개서’를 제목에 건 설명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울교육청 산하 교육정보연구원의 엄익주 연구사는 “수시모집과 관련해 무엇이 궁금한지 설문을 했더니 자소서가 1위였다”고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 즉 ‘자기를 소개하는 글’을 놓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는 9일 시작되는 대학 수시모집 전형 중 이른바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상당수 대학들이 자소서를 요구한다. 입시 경쟁이 뜨거운 한국 사회에서 학교생활기록부·수능·내신 등 대입 평가요소 중 민감하지 않은 게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소서가 특히 고민거리인 이유는 대입에 내는 서류 중 수험생이 직접 작성하는 것은 자소서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간절하다. “자소서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기업에 내는 이력서 비슷한 것 아닌가요.”(서울 숭실고 학생 학무모 이모씨) “내가 나를 소개하는 글이지만 내가 경험한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건지 막막해요.”(서울 대진여고 3학년 학생)

 대학들은 자소서의 위상을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자소서는 독립적 평가요소가 아니며 학생부종합전형의 합격을 좌우하지 않는다”다. 학생부종합전형은 대학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학생들의 고교 3년간을 기록한 학교생활기록부와 자소서를 심사한 뒤 면접을 거쳐 합격자를 선발한다. 그런데 학생부는 몇 %, 자소서는 몇 % 식으로 별도의 배점이 배정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학의 설명을 들어보자.

 “자소서는 학생부의 내비게이터 같은 존재다. 학생부는 객관적이지만 내용이 방대하다. 우리는 자소서를 ‘저의 학생부에서 이런 내용을 눈여겨봐 달라’는 의미로 해석한다.”(이화여대 남궁곤 입학처장) “자소서를 따로 평가해 반영하는 게 아니다. 대학은 학생이 손댈 수 없는 자료인 학생부를 가장 신뢰한다. 그럼에도 자소서를 받는 이유는 학생부에서 학생이 좀 더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중앙대 이산호 입학처장)

 이렇다 보니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아예 자소서를 받지 않는 대학도 있다. 한양대는 지난해부터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자소서를 받지 않고 있다. “수시 준비에 바쁜 수험생들이 자소서에 2, 3주를 매달립디다. 그래서 없앴어요. 학생부만 꼼꼼히 봐도 어떤 학생인지 파악이 되니까요.”(한양대 오성근 입학처장)

 자소서는 모든 대학이 동일한 형식을 활용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정한 공통문항 3개(모두 3500자)와 대학별 자율문항 1개(1000~1500자) 정도다.

  자율문항은 1000~1500자로 대학별로 다르며 주로 지원 동기나 졸업 후 진로 계획을 묻는다. 경희대는 ‘지원자의 교육 환경(가족·학교·지역 등)이 성장 과정에 미친 영향과 지원 학과에 지원한 동기, 입학 후 학업(진로) 계획에 대해 기술하라’(1500자), 연세대는 ‘고등학교 재학 기간 중 진로 선택을 위해 노력한 과정 또는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좌절을 극복한 과정을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기술하라’, 한국외대는 ‘지원 동기와 학업 계획을 중심으로 자신의 향후 진로에 대해 기술하라’고 요구한다.

 입학사정관들은 “자소서에서 글솜씨를 보진 않는다. 수험생이 자신의 어투로 직접 쓴 자소서, 생활부에 나오는 팩트(사실)에 기반한 자소서가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말한다. 문항별로 문항에 맞는 내용을 사례 위주로 적고, 여기에 수험생 본인의 생각을 담으라는 게 사정관들의 주문이다. 사정관들이 강조하는 것이 또 있다. “여러 사람이 첨삭한 자소서, 사설업체가 써준 자소서는 반드시 티가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일부 수험생과 학부모는 사설업체의 자소서 대필에 기대게 됐을까.

 대교협 대입상담센터 신영규 연구원의 설명은 이렇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초기엔 자소서에 대한 수험생 부담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독특한 이력을 자소서에 쓴 수험생이 합격했다’는 소문이 잘못 나면서 ‘자소서를 멋지게 써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하지만 학생부에 없는 스펙이 실린 자소서는 수험생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성시윤·백민경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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