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리베이트…쌍벌제·투아웃제도 못 막았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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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계 의료기기 업체인 A사는 종합병원 의사를 방콕·하와이 ·싱가포르 등으로 초청했다. 해외에서 진행하는 제품설명회나 학회에 초청한다는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관광과 골프접대가 대부분이었다. 2013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런 방식으로 접대를 받은 의사는74명에 달한다.

# B제약회사는 논문 번역이나 시장조사 설문응답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의사들은 이들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없지만 B사는 마치 의사가 논문을 번역하거나 설문한 것처럼 허위로 작성해다. 특히 리베이트를 제공하면서 이를 숨기기 위해 회사에서 직접 주지 않고 전직 임원이 설립한 설문조사기관인 R사를 통해 비용을 지급했다. 이렇게 B제약사에서 리베이트를 제공받은 의사는 461명이다. B사는 이들에게 544회에 걸쳐 3억 5900만원의 리베이트를 지급했다.

# 경기도 안산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C씨는 의국 회식이나 개인적인 식사자리에 자신이 식사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제약사에게 자료가 남지 않는 현금을 요구하거나 이들이 미리 결제해 놓은 식당·술집을 방문해 이용한다. 영업사원에게 신용카드를 받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C씨는 2012년 3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전문의약품 처방을 댓가로 7개 제약회사로부터 15회에 걸쳐 2028만원의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


의료계와 제약업계가 고질적인 리베이트 문제로 또 다시 시끄럽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제약·의료기기 업체와 이를 받은 의료인 모두를 처벌하는 ‘쌍벌제’에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업체의 행정처분을 강화하는 ‘리베이트 투아웃제’까지 도입했지만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적발된 업체 일부는 지난해 7월 시행된 투아웃제 적용 첫 사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서울서부지검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단장 이철희 부장)은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판매하고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미국계 의료기기 회사인 A사 한국지사장 김모(46)씨와 B제약사 영업이서 손모(46)씨 등 업계 관련자 7명을 각각 의료기기법·약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또 제약회사 7곳으로부터 리베이트를 제공받은 대학병원 의사 김모(48)씨 등 4명을 의료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의사 339명과 제약·의료기기업체 9곳에 대한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주목을 끈 점은 의료계 리베이트가 의약품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업계에도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국내업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통상적으로 의약품·의료기기 리베이트는 후발주자인 국내업체가 초기 시장 확보를 위해 제공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실제 단속도 국내 제약사 등을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이번 수사를 통해 외국계 기업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적발된 미국계 의료기기 A사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유럽·일본 등 전세계 19개에 지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다.

2010년 쌍벌제가 시행된지 5년이 지났지만 의료계 인식도 아직 더디다. 실제 일부 의사는 여전히 불법적인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리베이트를 요청하는 사례까지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런 요청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던 제약사 7곳 중 5곳은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적용될 예정이다. 만일 리베이트 제공행위로 또 한 번 적발되면 관련 의약품이 요양급여 대상에서 제외되는 강력한 행정제재를 받게 된다.

검찰 관계자는 “의약품 리베이트 제공은 영업비용 상승으로 인한 약값인상을 가져올 수 있어 결과적으로 국민의료비 부담을 증대시킨다”며 “불법리베이트 관행이 근절될 때까지 지속적인 단속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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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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