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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연민 아닌 연대감이 세계시민의 핵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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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재해·내전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에 자주 등장하는 이가 있다.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는 국제구호전문가 한비야(57·사진)씨다. 그는 월드비전코리아의 세계시민학교장도 5년째 맡고 있다. 2007년 시작된 세계시민학교는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시민교육 강사(누적 인원 645명)를 배출하고, 이들이 초·중·고교에서 세계시민 수업을 하도록 도와준다. 지난달 23일 만난 한씨는 “우리 학교를 통해 세계시민 교육을 받은 사람이 5년 전에는 50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50만 명으로 1만 배가 됐다. 하지만 전 국민의 1%정도라서 아직 성에 안 찬다”고 말했다. ‘세계시민’은 일반인들에게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한씨는 “쉽게 말해 나만큼 70억 명의 인류 모두가 소중하다고 보는 것이다. 불쌍한 외국민을 돕는다는 ‘연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연대감’이 세계시민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시민 의식을 표현하는 방법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는 “해외 난민촌으로 나가 자원봉사를 하는 것도 좋지만 평소 거기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관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시민학교는 이러한 ‘연대감’을 키워주는 일을 한다. 직접 만든 교재와 수업을 통해 인권, 시민의식 등을 교육한다. 그는 “교복도, 교가도, 건물도 없지만 사실상 세상에서 제일 큰 학교”라고 표현했다.

 한씨는 ‘연대감’을 넘어선 ‘우월감’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구호활동을 했다고 도덕적 우월성을 느끼는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지구집’의 집안일을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174만 명(올 1월 기준)에 달하는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 대한 편견 문제도 지적했다. “다문화 가정을 똑같은 이웃으로 바라봐야 한다. 옆 사람을 챙기지 못하는데 멀리 있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그가 세계시민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10년 전 파키스탄 지진 긴급지원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구호 생방송에 나갔을 때였다. “초췌한 얼굴에서 지진의 참혹함을 느꼈는지 지인들로부터 도와주겠다는 전화가 방송 도중 쏟아졌다. 하지만 다음 날 후원 방법을 알려주려 전화를 돌리자 다들 마음이 달라져 있었다. 순간적인 동정이 아니라 연대감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세계시민 교육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을 이때 절실히 하게 됐다.”

 세계시민학교장을 계속 맡고 싶다는 그는 “전 국민이 세계시민이 돼 세계시민학교가 없어지는 게 나의 꿈”이라며 활짝 웃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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