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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9월 위기설’은 과장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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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9월 글로벌 금융위기설이 또 나온다. 이번에는 중국발(發)이다. 중국 경제의 급락 가능성과 위기 대처 능력에 대한 불신이 제기된다. ‘위기를 생산하는 공장’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착각에 가까운 과장이다. 그럼? 세계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쭉 그래왔던 것처럼 9월에도 지지부진하고 갈팡질팡하지 싶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처럼 세계경제가 결딴나고 한국 경제가 거덜 날 위기에 처하진 않을 게다. 왜냐? 그때의 미국과 지금의 중국은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의 미국은 정부와 은행, 기업 등 모두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양적완화라는 비전통적 방안을 부양책으로 썼을 정도다. 전 세계로 퍼진 파생상품 속에 그토록 많은 부실이 숨겨져 있다는 것 역시 누구도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터졌고, 신속하게 수습할 대비책과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위기였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위기의 원인으로 중국의 저성장이 거론된다. 하지만 이는 돌발 사건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성장전략을 바꾸겠다고 공언한 중국 정부의 선택이고,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이다. 이른바 뉴노멀(新常態)이다. 2012년 하반기부터 중국의 성장률이 7%대로 떨어진 이유다. 성장전략을 선회한 건 고속성장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소득 불평등 확대, 지방정부 부실, 부동산 투기, 막대한 그림자금융, 과잉설비 등. 저성장은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고 안정 성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선택이다. 1970년대 말~80년대 초 우리의 중화학 투자 조정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당시 우리 정부의 캐치프레이즈도 ‘성장에서 안정으로’였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 후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됐나를 돌이켜보면 중국의 앞날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중국의 증시 폭락에 대한 우려도 크다. 소비 부진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수출 주도에서 내수 주도로 바꾸려는 의도에 배치된다. 소비를 키워 투자를 활성화해 다시 성장 기반을 다지겠다는 뉴노멀에도 어긋난다. 그렇다고 증시 폭락이 위기를 초래할 정도의 소비 부진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중국의 가계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예금과 주식, 채권, 보험 등 모든 금융자산을 합쳐도 가계자산의 15% 내외밖에 안 된다. 게다가 중국은 여전히 낙후된 곳이 많은 개발도상국이다. 전략을 바꾸면 성장할 데는 충분하다. 중서부가 단적인 예다. 철도 등 인프라도 여전히 미비하고 산업 고도화와 서비스산업 육성도 중국의 과제다. 4조 달러에 가까운 외환보유액 등 투자 여력도 있다. 2008년의 미국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중국발 위기 못지않게 9월 위기설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게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자본 유출과 글로벌 경제의 폭락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합리적 기대의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추론이다. 세계경제가 위기로 치닫는 게 사실이라면 미국이 서둘러 금리 인상을 하지 않을 게다.

 세계경제의 불안과 불확실성은 앞으로도 지속될 거다.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서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글로벌 수요 부진이다. 하지만 전례 없는 대규모 양적완화에도 수요는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요 부진은 바꿔 말하면 공급 과잉이다. 과잉 설비의 구조조정 없이는 세계경제 회복이 쉽지 않은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렇다면 9월의 문제는 장기 부진의 지속이지, 경제위기의 폭발은 아니다.

 경계를 게을리하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만일의 상황에 대한 대비야 철저할수록 좋다.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점검해야 한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실 등 경기 하방 위험 요인은 아무리 챙겨도 부족하지 않다. 동시에 해야 할 일은 착실히 해야 한다. 노동개혁이 단적인 예다. 정규직은 과보호돼 있고, 비정규직은 저임금에 허덕인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노동시장의 경쟁력이 세계 최하위권이며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답도 안다. 노동시장은 유연해져야 하고, 동일노동·동일임금은 준수돼야 하며, 임금피크제와 직무급 임금제가 시행돼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 위기가 닥친다면 ‘알면서도 못하는’ 무능에 대한 복수 아닐까.

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