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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되는 황우여식 교육과정 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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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교육과정 개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4일까지 과목별 공청회가 모두 끝난다. 교육부는 이달 말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고시한다. 새 교육과정은 2018년부터(초등 1, 2학년은 2017년) 적용된다. 교육과정은 국가 교육방향의 나침반이다. 초·중·고생들에게 어떤 내용을, 어떤 방향으로, 얼마만큼 가르칠지를 정밀하게 정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하는 개정이라 기대를 많이 했다. 현재 중 1이 고교생이 되는 2018년부터 문·이과 통합형 교육을 도입하고,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꾸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부의 일 처리가 어설프다. 고시를 코앞에 두고 쫓기듯 공청회를 한다. 과목 확대·축소에 따른 교사와 교수, 관련 학계의 반발 여지를 줄이려 속도전을 펼친다. 그렇다고 교과 이기주의가 낮잠을 자겠는가. 더 치열하게 유불리를 따지며 으르렁댄다. 수학 포기자(수포자)를 줄이려 고교에서 분할과 모비율, 공간벡터를 빼려 하자 전공자들이 불끈한다. 초등생에게 필요한 한자 병기와 소프트웨어 교육까지 반대한다.

 문득 노무현 정부 때의 교육과정 소동이 떠오른다. 2007년 1월 16일,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예정에 없던 출입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다음은 당시 대화 재구성.

 - 곧 고시해야 합니다.

 “(한숨을 쉬며) 교육과정 개편은 권력투쟁입니다.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요.”

 - 과목이 축소된 분야의 반발이 큽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국회의원들까지 특정 과목 필수 지정을 요구합니다.”

 - 어떻게 할 겁니까.

 “버겁네요. 이것 빼고 저것 빼면 뼈다귀만 남는데….”

 평생 교육학자였던 김 부총리가 고해성사를 한 격이었다. 결국 그는 권력투쟁을 견디지 못하고 예·체능 등 필수과목 수만 더 늘리고 말았다. 사회교과 안에 포함된 역사(국사+세계사)를 별도로 분리한 것은 공(功)이었다. 교육과정은 그 후 여러 번 바뀌었다. 역시 난장(亂場)이었다.

 2015년 9월 3일, 황우여 부총리(교육부 장관)가 기자 간담회를 하면 어떨까. ‘신중 검토’ ‘의견 수렴’ 같은 우회 화법이 뻔할 듯싶다. 사실 지금은 8년 전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 교과 이기주의가 여전한데 정치권이 대놓고 개입해서다. 그럴수록 황 부총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심을 잡고 학생만 생각하며 외풍을 견뎌야 한다. 그런데 외려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바로 역사(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다. 역사 교과서를 정부가 발행하는 국정(國定)으로 바꿀 것이냐, 아니면 지금처럼 민간이 다양하게 만들면 정부가 심의·승인하는 검정(檢定)을 유지할 것이냐가 핵심이다. 황 부총리는 “역사는 한 가지로 가르쳐야 한다”며 여러 차례 국정 전환을 시사했다. 공식 입장이냐는 질문엔 “개인 의견”이라며 에둘렀다.

 불은 정치권으로 옮겨붙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학생들이 편향된 교육으로 혼란을 겪지 않도록 국정 역사 교과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론을 공표한 셈이다.

그러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일본 극우파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이라며 비판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한 새정치연합은 10일 시작되는 국감에서 전면전을 벼른다. 김 대표와 황 부총리, 김재춘 교육부 차관까지 물고 늘어질 태세다. 김 차관은 교수 시절 “국정교과서는 독재국가나 후진국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고 쓴 논문이 표적이 됐다.

실제 역사 교과서 국정 발행 국가는 북한·베트남 등 극소수다. 우리는 광복 이후 검정, 박정희 대통령 때인 1974년부터 30여 년간 국정, 2007년 이후 검정으로 전환했다. 정사(正史)와 정사(政史) 논쟁이 격렬했다.

 개정 교육과정 확정 예정 시한은 3주 남았다. 그 사이 학계 대립과 정쟁이 극심할 것이다. 개정 방향과 균형의 변증법적 통합이 안 되면 배가 산으로 갈 판이다.

결국 황 부총리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교육과정 개편 최종 책임자도, 역사 교과서 국·검정 결정권자도 황 부총리다. 유통기한이 지난 ‘신중 검토’를 되뇌며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다. 중심을 단단히 잡기 바란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