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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현실주의 외교, 무엇으로 맞서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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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경제로 일어선 나라다.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 ‘G2’가 중국의 성적표다. 그들은 지난 3일 베이징 전승절 열병식을 통해 ‘굴기’ 리스트에 군사 항목을 새로 추가했다. 근력은 세 보였다. 독자 개발 신무기가 대거 공개됐고, 미국 본토를 위협할 전략 미사일도 등장했다. 가공할 무기를 펼쳐 놓은 시진핑 국가주석은 평화를 외쳤다. ‘전략무기와 평화’, 중국 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는 중국 외교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동력은 역시 경제였다. 위기 후 한동안 중국은 세계 경제성장의 절반을 만들어냈다. ‘와우~’, 중국인들은 환호했다.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싹튼 민족주의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중국은 불쾌하다(中國不高興)』 등 미국과도 한번 맞붙어 볼 만하다라는 식의 책이 여럿 출판되기도 했다. 그 정서가 대외 정책에 반영된 게 바로 힘을 바탕으로 한 현실주의 외교다.

 논리는 분명하다. 2030년께 중국은 미국을 추월하는 경제대국이 될 터이고, 세계는 미·중 양극 구도로 짜일 것이다. 그에 걸맞은 전략적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현실외교론자들의 주장이다. ‘오로지 경제만 생각할 뿐 패권 경쟁에 나서지 말라’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키움) 유훈은 퇴색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함께 등장했던 서방과의 공조 외교도 민족주의 앞에서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시진핑 시대 들어 현실주의 외교는 세련되게 발전한다. 그 앞에 ‘도의적’이라는 말이 붙었다. ‘물질적 국력을 바탕으로 하되, 세계를 이끌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제시하는 외교’를 지향했다. 하드 파워(군사력·경제력)와 소프트 파워의 결합인 셈이다. 대표적인 학자가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교수다. 그가 이런 주장을 담은 『역사의 관성(曆史的 慣性)』이라는 책을 쓴 건 시 주석 체제 출범 원년인 2013년이었다. 전문가들은 옌 교수의 도의적 현실주의 외교 이론이 시 주석의 대외 정책에 깊은 영향을 줬다고 분석한다. ‘전략무기와 평화’는 그 표현이다.

  경쟁은 투 트랙이다. 첫째는 이데올로기 경쟁이다. 중국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못지않은 지도 사상을 제시하고 싶어 한다. 허셰(和諧)·화이부동(和而不同) 등 전통 사상을 내세우며 ‘다르지만 공존하는 세계’를 강조하고 있다. 평화와 발전이라는 공공재(公共財)를 제공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추진하면서 대상국의 공동 번영을 강조하는 이유다.

 또 다른 경쟁은 ‘동맹’이다. 전략 파트너를 많이 확보해 국제정치에서의 영향력을 높이고자 한다. 옌 교수는 그 대상으로 러시아·파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라오스 등을 제시했다. 전승절 열병식에 군부대를 파견했던 나라들이다. ‘일대일로’가 지나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미국 동맹인 한국이 전승절 행사에 참가한 것은 중국의 입장으로 볼 때 엄청난 외교적 성과였다. 박근혜 대통령을 끔찍이 대접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중국의 현실주의 외교 공세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다. 군사 근력을 과시하면서도 평화를 외치고 더 많은 나라를 전략 파트너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다. 이런 중국에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할 것인가.

 맹자(孟子)의 말에서 힌트를 얻는다. 그가 말하길 “대국은 소국을 너그러움으로 대하고, 소국은 대국을 지혜로 대해야 한다(仁者爲以大事小, 智者爲以小事大)”고 했다. 대국의 인(仁)을 현대식으로 표현한 게 바로 소프트 파워요, 평화와 발전이라는 공공재다. 중국이 공공재를 얼마나 지켜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전승절에 참가한 우리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대국이 되고자 한다면 한반도의 안정과 발전에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하라’고 말이다. 소국의 지혜란 바로 그런 것이다.

 때론 중국의 분위기도 맞춰주고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미국과의 공조로 대중 외교력을 높여야 한다. 곧 한·미 정상회담, 한·중·일 정상회의 등이 잇따라 열린다. 전통 동맹 미국, 굴기하는 중국 사이에 선 우리가 믿을 거라곤 오로지 지혜뿐이다. 맹자의 말 그대로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