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눈 실핏줄 터졌다"…3포세대 청년 위해 노동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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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과 관련해 “국가 안보가 위협을 받아선 안 되기 때문에 끝까지 원칙을 갖고 임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한 배경에 ‘원칙주의’가 있었음을 직접 강조한 발언이다.
이날 오찬은 박 대통령이 25일 오후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리고 있던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에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을 보내 초청의사를 전하면서 성사됐다. 새누리당 의원들과 박 대통령의 단체 회동은 1년7개월 만이다.

박 대통령과 함께 하는 헤드테이블에는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서청원ㆍ김을동ㆍ김태호ㆍ이정현 최고위원, 김정훈 정책위의장 및 정갑윤 국회부의장이 앉았다.

다른 테이블에는 국회 상임위원회별로 배정된 의원들이 청와대 관계자들과 섞여 10명씩 앉았다.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남북 접촉의 성과를 짧게 설명한 뒤, 나머지 시간은 국내 현안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는 데 할애했다. “이제 곧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시작되는데, 4대 개혁(노동ㆍ공공ㆍ교육ㆍ금융) 과 관련한 법안과 산적한 민생경제 활성화 법안 처리에 최선을 다해달라”면서다.

박 대통령은 식사가 시작된 뒤 헤드 테이블에 앉은 당 지도부에게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3포(취업ㆍ결혼ㆍ출산 포기) 세대’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인데, 이들을 위해 노동개혁을 해야 하고 서비스산업발전법안이나 관광진흥법안 등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25일로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고, 마침 남북관계도 대결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반전된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내치에서 성과를 내야 할 때라고 보는 것 같다고 여당 의원들은 전했다.

오찬은 1시간20여분 동안 진행됐다. 식사 중 한 참석자가 “피곤해 보인다”고 하자, 43시간의 마라톤 협상을 지휘한 박 대통령은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면서 “(남북 관계가) 잘 되면 경제가 좋아질 텐데…”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식사에 앞서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라면서 남북 고위급 접촉의 성과를 축하했다. 그는 “남북 긴장 문제로 (박 대통령이) 나흘 동안 거의 잠도 못 주무셨을 텐데 피곤도 잊고 초청해줘 감사하다”면서 “대통령이 성공적인 국정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충성’이라는 단어도 자주 나왔다고 한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마무리 발언에서 “박근혜 정부 2기에 노동개혁을 중심으로 4대 개혁 과제를 잘 풀고, 경제 활성화 법안 등 민생법안도 힘을 합쳐 통과시켜 박근혜 정부를 성공시키자”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남북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연찬회가 열렸으면 긴장과 불안의 연찬회가 될 뻔했는데,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 남북 접촉이 잘 되는 바람에 연찬회장이 축제로 바뀌었다. 내가 대통령한테 더 충성해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주스 잔을 들고 건배사를 하게 된 김을동 최고위원도 일어서자마자 박 대통령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면서 “충성”하고 외쳤다고 한다. 김 최고위원은 TV예능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자신의 손자들(배우 송일국씨의 아들) 이름이 들어간 “대한ㆍ민국ㆍ만세”를 건배사로 제안해 박 대통령을 포함한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박 대통령은 김희국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농담을 했는데 참석자들 반응이 썰렁하자 "개그맨이라는 게 상당히 노력이 필요하더라. 개그맨 최양락 씨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만났는데, 부시맨이 아니더라'라고 말했다"면서 '썰렁 개그' 한 토막을 소개해 또한번 폭소가 터졌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이날 오찬에는 새누리당 재적의원 159명 중 138명이 참석했다. 갑자기 행사가 잡히는 바람에 기존 일정을 취소하지 못한 이인제 최고위원 등 21명이 참석하지 못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도 재판이 진행 중임을 의식해 참석하지 않았다.

국회법 개정 사태 때 박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인’으로 지목돼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유승민 의원은 오찬에 참석했다. 유 의원은 전날 새누리당 연찬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청와대 오찬에는 나왔다. 하지만 좌석이 박 대통령과는 가장 먼 구석 쪽에 배치돼 박 대통령과 직접 마주치진 않았다. 유 의원이 속한 국방위원회는 헤드 테이블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이날 좌석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배치했다고 한다. 유 의원은 오찬 후 기자들에게 “(대통령과 따로 인사를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남궁욱ㆍ김경희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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