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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전 세계 흩어진 모딜리아니 작품 한자리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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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 몽파르나스의 전설

앉아 있는 갈색 머리 어린 소녀, 1918, 92×60㎝, 캔버스에 유채, 피카소 미술관 소장.

길쭉한 얼굴, 아몬드형의 동공 없는 눈, 살짝 갸웃한 긴 목, 동그란 어깨와 단정하게 포갠 두 손….

 누구의 그림인지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될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 것”이라던 모딜리아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는 인상파 전성시대인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서 독특한 인물화를 남기고 36세로 요절했다.

 열네 살 연하의 부인 잔느 에뷔테른은 다음 날 투신,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살 딸이 있었고, 배 속엔 8개월 된 둘째가 있었다.

 수려한 외모와 병약한 삶, 함께 생을 마감한 젊은 반려자, 그리고 이야기를 전하는 듯한 400여 점의 작품. 모딜리아니는 그대로 전설이 됐다.

 모딜리아니는 1884년 7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유대인 가정에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날 무렵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은 파산 상태였다. 11세에 늑막염, 14세에 장티푸스, 16세에 결핵 등 병치레가 잦았다. 미술학교에 다니다가 스물두 살에 파리로 건너가 피카소·브랑쿠시와 어울리며 조각에도 심취했다.

 파리 생활 8년간 단 한 점의 작품도 팔지 못하자 조각가로 전업을 시도한다. 고대 그리스 조각, 아프리카 원시 조각에 심취했지만, 병약한 탓에 4년 만에 다시 회화로 돌아온다. 조각을 닮은 초상화는 이렇게 나왔다. 화가·소설가·연극인·화상 등 지인들의 초상화는 그대로 당대 파리 예술계의 비망록이 됐다.

 1917년 생애 첫 전시를 열었지만, 누드화가 외설적이라며 철거당했다. 그로부터 3년이 채 못 돼 결핵으로 인한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떴다. “이제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갔다.” 먼저 간 동료를 애석해하며 지인들이 남긴 묘비명이다. 파리 몽파르나스 페르 라셰즈 묘지에 잔느와 함께 묻혀 있다.

 모딜리아니의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서 열리고 있다. 파리 시립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예루살렘 이스라엘 미술관, 도쿄 후지미술관, 오사카 시립근대미술관 등 전 세계 40여 곳의 미술관과 개인 컬렉션에 산재한 그의 작품 70여 점을 모았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모딜리아니, 몽파르나스의 전설=10월 4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성인 1만5000원, 만 13∼18세 1만원. 토요일 오후 6∼10시 정상 요금에서 2000원 할인.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 1588-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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