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하세요] 떠났죠, 제주로 … 치유의 섬에서 음악과 함께 살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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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귀포시 사계해변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성원. “시간 날 때마다 자전거·오토바이 등을 타고 섬 전역을 여행한다”는 그는 제주의 맛집을 지역별로 두루 꿰고 있었다. [신도희 기자]
1987년 들국화 활동 시절 사진. 왼쪽부터 전인권(보컬)·고(故) 허성욱(키보드)·최성원(보컬·베이스)·손진태(기타)·고 주찬권(드럼). [중앙포토]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제주도의 푸른 밤’은 첫 소절만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는 노래다. 눈을 감고 듣다 보면 맑고 푸른 섬의 풍광이 떠오르고 어디든 떠나고 싶은 충동이 절로 생긴다. ‘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지쳤잖아요/ 술집에 카페에 많은 사람에’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어느새 노랫말을 지은 이가 궁금해진다. 28년 전 제주도에 반해 이 노래를 만든 주인공은 그룹 들국화 출신의 가수 겸 작곡가 최성원(61)이다.

 들국화 1, 2집은 한국 가요의 명반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앨범이다. 그 중에서도 명곡으로 손꼽히는 ‘그것만이 내세상’ ‘매일 그대와’ ‘제발’ 등이 모두 베이시스트였던 최성원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데뷔와 동시에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떠올랐지만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2년 만에 해체했고 1987년, 전인권 등 다른 멤버들이 대마초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당시 최성원은 착잡한 마음을 달래려 부산에서 밤배를 타고 제주를 찾았다. 정방폭포 부근에서 보름간 머물며 만든 곡이 바로 ‘제주도의 푸른 밤’이다.

 “많이 지쳐있었어요. 제주도에서 위안을 얻었죠. 제가 받은 위로와 다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었어요. 노래가 발표된 지 30년 가까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 노래를 듣고 위로받았다는 사람이 많아서 놀라곤 해요. 가끔 지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기타를 연주하며 이 노래를 부르는데, 20대 젊은이들이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자연과 음악이 주는 위로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는 현재 제주시에 살고 있다. 2011년 입도해 벌써 4년이 넘었다. 아내와 자녀들은 서울에 살고 있다. ‘제주도의 푸른 밤’을 만든 후부터 그는 늘 제주에서의 삶을 꿈꿨다. 1년에 3~4번은 꼭 제주에 내려가 한참을 지내고 돌아왔다. 그때마다 ‘언젠가 제주에 살리라’는 결심을 품고 있었다.

 “제주도는 천의 얼굴을 가진 섬이에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동시에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자리하고 있죠. 거기다 사계절, 바람과 태풍까지 더해져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드러내요. 지루할 틈이 없는, 정체되지 않은 매력을 지닌 곳이죠. 그런 점이 음악 하는 사람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이토록 제주도를 사랑하는 최씨에게 최근의 ‘제주 열풍’ 현상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 땅값은 하루가 다르게 들썩이고, 한적했던 바닷가에는 위락 시설이 즐비하다. 그는 “불과 4년 전만 해도 고즈넉했던 동네가 지금은 유흥가처럼 변해버려 가슴이 아프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제주도가 발전하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아무런 계획과 비전 없는 개발은 경계해야 해요. 개발을 하려면 전문인력들이 미학적, 자연친화적으로 접근해서 제주도 특유의 멋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느 휴양지와 별다를 바 없다면 누가 제주도를 찾아오겠어요. 제주도는 자연으로부터 치유를 받는 섬이에요. 그 점을 잘 살려서 발전시켜야 해요.”

 대부분의 일과를 작곡과 제주여행으로 보낸다는 최성원. 그는 지난해부터 KBS 제주2라디오(제주시 일원 91.9㎒, 서귀포시 일원 89.7㎒)의 ‘제주도의 푸른 밤, 최성원입니다’(월~금 오후 8시10분~9시)를 진행하고 있다. “환갑이 넘어 DJ 데뷔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며 웃는 그는 “진정한 라디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팝 음악의 전성기는 60~80년대예요. 이 시기의 음악은 단순히 ‘추억의 팝송’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진짜 음악 방송’을 만들고 싶어요.”

제주=신도희 기자 t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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