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매콤·쫀득한 메밀전병집 다닥다닥 … 나그네 발길 붙잡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강원도 영월 │ 서부시장 먹거리장터. 강원도 향토음식인 메밀전병을 파는 골목으로 특화됐다.

강원도 영월은 가볼 곳이 많다. 래프팅 족의 성지 동강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한반도 지형을 빼닮은 선암마을도 읍내에서 멀지 않다. 단종의 슬픈 역사도 전해 내려오고, 최근에는 박물관 마을로 거듭난 참이다. 이들 유명 관광지 말고도 영월이 자랑하는 명소가 하나 더 있다. 영월 최대의 전통시장 ‘서부시장’이다. 서부시장에 가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강원도 향토 음식이 있다. 이름하여 메밀전병이다. 얇게 부친 메밀 부침개 안에 볶은 김치가 들어간, 이 투박한 옛날 먹거리 덕분에 서부시장은 물론이고 침체됐던 영월도 활기를 되찾았다. week&이 서부시장 먹자골목에서 영월의 명물 메밀전병을 맛보고 왔다.

강원도의 맛, 메밀전병

들기름에 볶은 김치로 속을 채우는 영월식 메밀전병

영월 서부시장의 전신은 1959년 창설된 서부아침시장이다. 서부아침시장은 일제강점기부터 난전이 들어서던 자리에 뚝딱뚝딱 세운 ‘상설시장’이었다. 두메산골 영월에 당시로서는 최신식 상설시장이 들어선 이유는 다른 게 없다.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중심지였던 영월은 그만큼 돈과 사람이 넘쳤다.

1960~70년대만 해도 영월의 인구는 5만 명을 훌쩍 넘었다. 석탄산업이 전성기를 누릴 때 서부아침시장 주변으로 생활잡화를 취급하는 서부공설시장과 영월종합상가가 들어섰다. 이 세 군데 시장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 ‘서부시장’이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광부와 그의 가족이 전체 면적 1만2215㎡(약 3700평)에 달하는 서부시장을 신바람나게 활보하고 다녔다. 하나 72년 영월광업소 마차탄광이 폐광하고 76년 영월화력발전소까지 발전을 중단하면서 지역 인구는 3만 명까지 줄었다. 지역 주민에 기대어 먹고 살던 시장도 함께 쇠락했다.

그러나 영월은 90년대 들어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영월이 숨은 오지 여행지로 주목을 받으면서 영월에 여행객의 발길이 늘어났다.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려는 요량으로 서부시장 먹거리 장터를 찾았던 여행자 눈에 들어온 메뉴가 바로 ‘메밀전병’이었다.

“옛날에는 감자를 쪄먹고, 옥수수죽을 끓여 먹고 그것도 질리면 메밀가루를 풀어서 부침개를 해먹었지요. 이게 그냥 먹으면 텁텁하거든. 강원도 고성이나 정선은 무채를 넣어 먹는데 영월에서는 매큼한 김치를 넣어 맛을 냈어요.”

녹차가루, 복분자즙 등을 넣어 색감을 살린 메밀전병

고옥하(71) 할머니가 이끄는 ‘정선집’은 29년 전에 ‘미탄집’ ‘연하집’ 등과 함께 서문시장에서 처음 메밀전병을 내놓은 1세대 전병 집이다. 사실 메밀전병은 대단한 것이 없는 음식이다. 담백한 메밀 부침개에 뭐든 싸먹기만 하면 그게 곧 메밀전병이다. 쌀이 귀한 강원도에서 밥 대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 도시 사람 눈에 색다르게 보였을 따름이다. 메밀전병이 영월과 서부시장을 대표하는 메뉴로 등극하면서 호빵이나 떡볶이를 팔던 시장 상인도 메밀전병으로 주메뉴를 바꿨다. 서부시장 먹거리 장터는 여행객의 호응의 힘입어 강원도 향토 음식 먹자골목으로 자연스럽게 변신했다.

메밀전병 각축장 먹거리 장터

영월의 관광명소 서부시장 먹거리장터

“여행객이야 풍문을 듣고 유명한 곳만 골라서 찾아가지만 영월 사람은 저마다 단골집이 있어요. 영월 남자라면 마누라는 바꿔도 전병집은 안 바꾼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요.”

솥뚜껑에 메밀부침개를 부치고 있는 시장 상인

‘연하집’ 고옥자(68) 할머니는 겉으로는 똑같아 보여도 집마다 전병 맛이 다르다고 일러줬다. 현재 서부시장의 먹거리 장터는 약 200평 규모다. 이 공간에 점포 55개가 다닥다닥 들어가 있는데, 무려 35곳이 메밀전병과 메밀부침을 팔고 있다. week&은 서부시장을 함께 찾았던 대학생 3명과 함께 맛 평가단을 꾸려 30년 내력을 갖춘 곳부터 경력 5년차 새내기 가게까지 점포 10여 군데를 돌며 메밀전병을 시식했다.

서부시장에서 메밀전병을 만드는 방법은 큰 차이가 없었다.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섞은 묽은 반죽으로 얇은 피를 만들고 그 속에 볶은 김치와 당면, 양배추를 채워 넣는 방식을 모든 집이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맛은 차이가 컸다.

정선집(033-373-6665)은 김치를 볶을 때 들기름을 듬뿍 넣어서 맛이 고소했고, 예미분식(033-347-5276)은 당면을 많이 넣어서 하나만 먹어도 배가 든든했다. 한입 베어 물면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운 맛을 내는 봉래집(033-373-0276), 얇고 쫀득쫀득한 피가 일품인 연하집(033-373-0579)도 저마다 개성을 자랑했다. 미탄집(033-374-4090)은 매운 맛이 덜 해 아이도 쉽게 먹을 수 있을 듯했고, 포항집(033-374-0052)은 촉촉한 느낌이었다.

서부시장 메밀전병이 입소문을 타면서 하루 평균 먹거리 장터를 찾아오는 손님은 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왕근(49) 서부시장 상인회장을 통해 서부시장 먹거리 장터의 청사진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영월에 왔다가 서부시장에 들르는 게 아니라 서부시장을 오려고 영월을 들렀으면 좋겠어요. 여행객이 여유롭게 메밀전병을 먹을 수 있도록 먹거리 장터 옆에 따로 시식 공간을 조성하고 메밀전병을 만드는 체험 행사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여행정보=영월 서부시장은 서울시청에서 자동차로 2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영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부시장까지 걸어서 1분 거리라 대중교통으로도 쉽게 닿을 수 있다. 서부시장에서 ‘메밀전병 파는 곳’이라는 푯말을 따라가면 먹거리 장터를 찾을 수 있다. 메밀전병 1개 1000원. 미탄집만 1개 1500원에 팔고 있다. 메밀전병은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 보통 30개 이상 주문해야 하고 당일 주문하면 다음날 냉동 포장된 전병을 받아볼 수 있다. 서부시장상인회 033-374-2520.

글=양보라 기자bora@joongang.co.kr, 황수현 인턴기자(한국외대 언론정보학)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관련 기사] │ 골목시장 탐방 ① 청주 서문시장
24시간 지글지글 ‘삼겹살 거리’ … 하루 1만여 명 북적북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