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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대통령' 허재 둘째 아들 허훈, 농구계에 새 바람 일으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농구 대통령' 허재(50)의 둘째 아들 허훈(20·연세대)이 농구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연세대는 20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아마 최강전 3회전에서 울산 모비스에 78-79로 아깝게 졌다. 3쿼터 초반 53-33, 20점 차로 앞섰던 연세대는 지난 시즌까지 프로농구 3연속 우승팀인 모비스의 관록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연세대 2학년 포인트 가드 허훈은 이날 23점·8리바운드·7어시스트로 펄펄 날았다. 지난 18일 SK와 2회전에서 25점·7어시스트·5가로채기를 기록했던 허훈은 이날 프로농구 MVP 3회 수상자 양동근(34)을 상대하면서도 주눅들지 않았다.

허재 전 KCC 감독의 장남 허웅(22·동부)은 슈팅 가드로 지난 시즌 프로에 데뷔해 평균 4.8점을 올렸다. 차남 허훈은 키 1m81cm의 포인트 가드다. 농구인들은 "허훈이 허웅보다 개인 능력에선 조금 낫다"고 평가한다.

허훈의 어머니 이미수(49)씨는 이날 남편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 형제는 2005년 허 전 감독이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하던 시절 처음 농구공을 잡았다. 이씨는 "UCLA 농구팀 감독이 '한국 마이클 조던의 아들'이란 이야기를 듣더니 '제임스(허훈의 영어 이름)는 농구 센스가 워낙 좋아 크게 될 선수'라고 칭찬했다"고 전했다.

2005년 귀국한 허훈은 형을 따라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했다. 이씨는 "남편이 처음엔 반대했지만 아이들이 워낙 농구를 좋아해 두 손을 들었다"고 소개했다. 형제는 나란히 용산중·고와 연세대를 거치며 성장했다.

왼손잡이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던 허 전 감독은 이날 경기 내내 흐뭇한 표정이었다. 그는 "두 아들 모두 오른손잡이다. 웅이는 슛 감각이 좋다. 훈이는 배짱이 두둑한 플레이를 하는 게 나를 닮았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10년째 아이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농구박사가 됐다. 훈이는 남편처럼 승부처에서 집중력이 강하다"고 말했다.

형제는 성격이 정반대다. 이씨는 "웅이는 과묵하다. 반면 훈이는 끼가 있다"고 말했다. 허훈은 SK전 승리 후 "아버지도 넘을 수 있고, 이 시대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고 당돌하게 말했다. "두 아들과 1대1 대결을 하면 진다"는 허 전 감독은 '특별훈련을 시키느냐'는 질문에 "골프로 치면 레슨 프로가 드라이브 자세를 한 번 잡아주는 것처럼, 슛 폼을 한 번 잡아주는 정도다"고 말했다.

유재학(53) 모비스 감독은 "허훈은 길을 알고 농구를 한다"고 칭찬했다. 지난해 8월 연세대를 맡은 은희석(38) 감독은 "지난해 훈이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했다. '정석대로 플레이 하라'고 가르쳤더니 실수가 점점 줄었다"고 말했다. SK전에서 동생 플레이를 지켜봤던 허웅은 SNS를 통해 '내일부터 개인연습 나가야겠다. 훈이 소오름(소름)'이란 글을 남겼다.

허재의 상징인 등번호 9번을 단 허훈은 이날 현역 때 아버지처럼 과감하게 드라이브인을 하고 장거리슛을 꽂아넣었다. 하지만 종료 8초 전 양동근(12점·9어시스트)에게 역전 레이업슛을 내줬다. 농구인들은 "허훈은 아직 허재 반도 못 따라간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은 감독은 "훈이는 오늘 200%를 쏟아부어 근육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 득점력을 갖춘 포인트 가드로서 밀당(밀고 당기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기를 마친 허훈은 아버지와 똑같은 중저음 목소리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대회였다"면서도 "롤모델 양동근 선배님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볼처리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축구 최고 스타 차범근(53)의 아들 차두리(35·서울)는 월드컵에 두 차례 출전하며 부친의 명성에 근접했다. '아들이 아버지의 명성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어머니 이씨는 "훈이는 늘 해피(행복)하다"고 말했다. 허훈은 "아버지 선수 시절 경기를 종종 보는데, 그 시대랑 지금 시대랑 다르다.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게 내 목표" 라고 말했다.

프로 팀끼리 맞붙은 경기에서는 오리온스가 KCC를 83-56으로 꺾고 결승에 선착했다. 오리온스는 모비스-고려대 승자와 우승을 놓고 격돌한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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