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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파일] 수입쌀, 국산으로 속인 뒤 막걸리 등 제조한 업자 무더기 적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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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쌀로 떡이나 막걸리를 만들어놓고도 국내산 쌀을 사용한 것처럼 속인 제조업체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습니다. 서울 서부지검 부정식품사범 합동수사단(단장 이철희)의 이번 단속에 적발된 업체는 모두 합쳐 18개.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28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검찰 조사 결과, 18개 업체가 올린 부당이득은 40억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적발된 업체들 중에는 90년 전통의 유서 깊은 막걸리 제조업체도 포함됐습니다. 지난 2013년 쌀가공산업 육성공로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업체였죠. 그러나 미국산 쌀을 국내산 쌀과 섞어 만든 막걸리를 국내산이라 속여 60만 병(5억원 상당)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지상파 방송 예능프로그램에 “강원 지역 대표 막걸리”로 소개돼 높은 인기를 누리던 한 동동주 제조업체도 ‘우리쌀 100%’라고 허위 광고를 한 뒤 2억3000만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수입쌀을 섞어 만든 떡과 막걸리를 국내산이라고 속이고 대형 마트와 장례식장 등에 납품한 업체들도 적발됐습니다.

국산으로 둔갑한 수입쌀(왼쪽)과 단속에 적발된 막걸리 공장에서 발효 중인 수입쌀 [사진=서울 서부지방검찰청 제공]

◇ “5% 관세로 들어오는 의무수입 쌀 40만 8700톤의 행방을 찾아라”

이들은 왜 길게는 수십년에 걸쳐 힘들게 쌓아올린 신뢰를 져버리고 소비자들을 속인 걸까요? 결국 돈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2013년 기준으로 국내산 쌀 80㎏ 가격은 17만5086원입니다. 같은 양의 미국산(6만3303원)이나 중국산(8만5177원)보다 2배 이상 비쌉니다. 수입 쌀을 조금만 섞어서 써도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겁니다.

불법 유통에 이용되는 쌀은 주로 ‘5%’의 낮은 관세로 매년 40만 8700t씩 수입되는 의무수입물량입니다. 국내 시장 사정을 감안해 100% 가공용 쌀로만 수입하고 있지요. 40만8700t을 초과하는 수입 분량은 513%의 관세가 적용돼 경쟁력이 없습니다. 최근 정부에서 “의무수입 초과 물량에 대해 513% 관세율을 유지하려면 그동안 수입하지 않았던 '밥 짓는 쌀'도 수입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혀 농민들이 극심하게 반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문제는 의무 수입되는 쌀 40만 8700t도 적은 양이 아니라는 겁니다. 올해 예상되는 우리나라 연간 쌀 소비량 400만t의 약 10%에 이릅니다. 전 국민이 한 달 넘게 먹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이지요. 설상가상으로 쌀시장 개방 시점을 늦추는 대가로 의무수입물량이 해마다 늘어나다 보니 재고량이 계속 쌓여 불법 유통될 여지도 그만큼 커졌습니다. 재고량이 계속 늘어나다보니 불법유통도 막고, 북한 식량난도 줄이는 '일석이조'를 노리고 "대북지원에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었죠. 아래 정리된 쌀 의무수입량과 재고량 그래프를 보시면 더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수입쌀 의무수입량, 의무수입쌀 재고량 추이 [그래픽=임해든]

물론 정부에서도 낮은 관세로 의무 수입된 대량의 쌀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부정 유통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죠. 검찰 관계자는 “쌀시장이 개방된 지 6개월이 지나 5% 관세로 의무 수입되는 물량의 유통경로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 식약처 등 유관 기관과 함께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다”며 “수입쌀의 부정유통은 국내 쌀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식량주권까지 위협할 소지가 있는만큼 엄단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영상=정혁준 기자. 서울 서부지방검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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