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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view &] 관광 허브 걷어차는 정부의 ‘유커 격리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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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표재용
산업부장

동북아의 관광 허브가 되고 싶다는 정부의 바람은 어느 때보다 간절해진 듯하다. 얼마 전 주무부처도 아닌 외교부까지 동원해 주한 외교관들을 상대로 한국 관광을 재개해줄 것을 요청할 정도니 말이다. 일종의 트라우마다. 느닷없는 메르스 창궐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증발하듯 사라져버린 것을 목도한 게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서울과 제주도 등 주요 관광지의 뒷골목까지 꽉 채웠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등 외국인들은 한국이 메르스로 쑥대밭이 된 이후 일본 등 다른 나라로 대거 발길을 돌렸다. 정부가 서둘러 메르스 종식까지 선언했지만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달라질 기미가 없다.

 이유는 좀 다르지만 유커에 목을 맨 건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초 신규 면세점 네 곳을 내주는 입찰엔 무려 스물두 개 기업이 몰려 사활을 건 전쟁을 치렀다. 카지노 영업이 가능한 복합리조트 유치 경쟁은 더욱 불꽃 튄다. 영종도가 있는 인천에만 17개 회사가 유치 신청서를 냈다. 전국적으로는 공기업· 민간기업 가릴 것 없이 제안서를 낸 기업만 벌써 30여곳이 넘는다. 그야말로 무한 경쟁이다. 복합리조트와 시내 면세점 확충 모두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회심의 카드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기대감보다 걱정이 앞선다. 먼저 신규 시내 면세점이다.

 서울 도심이나 강남과 달리 내국인들조차 잘 찾지않는 입지라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어찌된 영문인지 국내 소비자들에 대한 배려나 서비스에 대한 언급은 쏙 빠져 있다. 지금도 국내 면세점을 찾는 고객 열 중 세 명은 우리나라 손님인데도 말이다. 아마도 해당 기업들에겐 국내 고객들은 안중에 없거나, 혹은 이참에 외국인만 출입이 가능한 면세점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복합리조트 정책은 더 우려스럽다. 공연장·컨벤션·쇼핑몰 등을 한 곳에 몰아넣고 그곳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슬쩍 허가해주면 볼거리가 없다는 불만도 잠재우고, 지갑도 더 열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유감스럽지만 이것 역시 착각이다. 외국인만 카지노 출입이 가능한 국내 복합리조트엔 유커는 물론 해외 부호들은 눈길도 안줄 것이다.

 수십년간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해온 국내 카지노들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숫자가 말해준다. 이미 국내에는 서울 도심 특급호텔을 포함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영업장이 16개나 된다. 그러나 이들 외국인전용 카지노 매출을 다 합해도 내외국인 모두에게 개방된 정선카지노 한곳의 매출만 못하다. 심지어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 단골고객중 상당수는 한국서 일하는 중국인이나 조선족 근로자들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부유층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익명 보장이 안돼서다. 중국 부호들이 한눈에 자신을 알아보는 자국민들이 득실대는 곳을 찾을리 만무한 것이다. 그런 부유층 외국인들은 내외국인이 모두 자유롭게 출입해 어우러지는 싱가포르 마리나샌즈나 미국 라스베이거스 같은 복합 레저도시로 간다. 그것도 가족이나 친지들을 동반하고 말이다. 설령 돈 많은 유커들이 찾는다 해도 그 복합리조트를 운용하는 기업은 중국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공산이 크다. 중국인만 카지노 출입을 허용해 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불건전 도박시설 운용업체로 비칠 게 틀림 없어서다. 자칫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실제로 몇몇 국내 카지노들은 올 들어 벌써 두 번이나 반부패 전쟁이 한창인 중국에서 고객을 모집하다 공안에 적발돼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이런 식의 ‘유커 분리 정책’ 은 사실 복합레저시설이 관광객 유치의 해법이라면서도 정작 속으로는 카지노를 여전히 격리와 징벌의 대상으로 보는 정부의 이중적인 잣대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기업은 내국인과 유커를 떼어놓는 식의 해외 관광객 유치 전략을 되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내국인이 먼저 환호할 만한 관광지와 시설을 확충하는게 먼저다. 그런 곳이어야만 외국인들도 자연스럽게 몰려든다. 더불어 이참에 서울과 제주 등 특정 지역에만 몰리지 않게 관광지를 추가 개발하고 추억 대신 불쾌감만 안고 돌아가게 만드는 싸구려 관광부터 시급히 손질하자.

 지금같은 생각으로 들어설 신규 면세점과 카지노 복합 리조트는 ‘게토(Ghetto,중세 유럽의 유대인 격리 구역)’마냥 두고두고 후유증만 남긴다.

표재용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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