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왜 열린 민족주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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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핵 문제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남북관계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때일수록 가장 근본되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간답게 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아직 만족스럽지 않지만, 우리는 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적지 않은 진전을 이뤘다.

1인당 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섰고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의 향유가 점점 더 일상의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닫힌 사회(closed society)를 벗어나 열린 사회(open society)를 닮아가기 시작함으로써 가능해졌다.

*** 신뢰구축으로 푸는 남북문제

닫힌 사회는 미신.터부(禁忌), 통치자에게 편리한 제도, 절대권력 등에 의해 일상생활이 속박받고 대다수 사회구성원에게 자아실현과 발전의 기회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제, 해방 이후 혼란, 전쟁 등의 격변이 전통사회의 기반을 붕괴시켰고, 우리의 부모.선배들이 자식에게 좀더 나은 교육을 시키고 잘 살아보겠다고 힘을 다해 일하고, 죽더라도 부당한 정권과 권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행동에 옮김으로써 무지와 빈곤과 독재의 닫힌 사회에서 벗어난 것이다.

열린 사회는 자신을 위해 판단하고 결정내리는 지성의 권위를 구성원 각자에게 인정하며 자유.평등.형제애의 인본주의를 신뢰한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 이념에 기초하고 있으며,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을 받드는 사회다.

그 구성원은 남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정한 목적을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추구한다.

이런 열린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며, 가지고 있는 재산.재능.지식.창의력을 모두 동원해 일하는 데 그 결과 경제는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사회는 번영하게 된다.

이것이 신체조건. 생각.습관.좋고 싫은 것이 같지 않은 사람들이 다른 목적, 때로는 상충하는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공동의 번영을 이루는 방법이다. 열린 사회는 인류가 찾아 낸, 인간답게 살고 번영을 누리는 유일한 길이다.

이렇게 보면 남(南)은 열린 사회를 더 완전하게 만들어야 하고, 북(北)은 닫힌 사회를 벗어나 열린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래야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이 정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남북관계의 해결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면, 남과 북은 상대방이 점점 더 민주 이념과 개인의 자유.재산권을 존중하는 열린 사회가 되도록 서로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신뢰구축 및 협력이다.

필자는 열린 사회의 원칙을 지키면 누구든 한반도에 같이 살 수 있다는 '열린 민족주의'를 남북관계 접근의 한 원칙으로 제안한다.

남은 물질적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북한 주민의 빈곤을 덜어주는 것이 옳다. 또 북이 닫힌 사회에서 벗어나 열린 사회로 변신하려 할 때 최대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는 같은 민족으로서 남의 의무라 할 수 있다.

*** 北을 도울 수 있게 南 지원해야

그러나 남의 존립을 위협하고 자유를 억압하며 열린 사회의 작동을 중단시키려는 북의 태도는 민족화합의 이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남의 특정 언론에 대한 폭언과 위협, 검찰 조사를 저지하려는 시도 등이 그 예다.

이는 민주와 자유.재산권의 철저한 보장이 평화와 번영의 필수조건이라는 데 대한 이해 부족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이해는 하지만 현 북한 정권의 유지를 위해 민족의 평화와 번영이 희생돼도 좋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열린 사회의 원칙이 남에서마저 무너진다면 이는 북한 주민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음은 물론 북을 도울 수 있는 남의 힘마저 없애버릴 것이다. 남북이 모두 이 점을 분명히 이해할 때 남북관계는 바른 궤도에 오를 것이다.

兪正鎬(KDI 경제정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