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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레츠 고 9988] 딸의 부모 부양능력, 아들의 절반만 인정 … 양성평등 못 따라가는 복지제도 수두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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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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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께 50대 남성이 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이런 질문을 했다. “누나가 지난해 초에 이혼했는데 전 매형의 연금을 누나가 나눠 받을 길이 없겠습니까.” 그의 전 매형은 퇴역 군인이었다. 하소연은 계속됐다. “이혼하면 국민연금은 분할된다는데, 군인연금은 안 되는 겁니까. 누나의 형편이 너무 어려운데, 방법이 없습니까.” 안타깝게도 그의 누나가 전남편의 연금을 나눠 받을 길은 없다. 현행 군인연금법에는 분할연금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사립학교교직원연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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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양성 평등에 역행하는 복지 제도가 수두룩하다. 군인·사학연금은 여성에게 불리한 반면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건강보험은 남성에게 불리하게 돼 있다. 군인연금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이 남성이다. 사학연금도 남성 수령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지난해 말 현재 82%다. 황혼이혼을 하게 되면 연금이 나뉘지 않아 군인 또는 사립학교 교직원 아내의 노후 복지에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사학연금은 뿌리가 같은 제도다. 이 중 공무원연금은 5월 국회에서 법률을 개정해 분할연금이 도입됐다. 군인연금과 사학연금도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국민연금에도 여성 차별 조항이 남아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보험료를 내다가 결혼하면서 전업주부가 된 446만 명(배우자는 국민연금 가입자인 경우)이 국민연금 제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이 때문에 여러 불이익을 받는다. 밀린 보험료를 나중에 내고 연금을 더 받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다쳐도 장애연금을 못 받고, 10년 미만 가입자는 사망해도 유족연금이 생기지 않는다. 반면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결혼하지 않거나 이혼한 상태에서 보험료를 안 내고 있을 경우(납부예외자) 이런 불이익이 없다. 이런 불합리를 고치기 위해 정부가 4월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그 위로 먼지만 쌓이고 있다. 446만 명 전업주부의 대다수가 여성이어서 대표적인 여성 차별 조항으로 비판받아 왔다. 국민연금의 유족연금도 여성에게 불리하다. 유족연금을 받다가 재혼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유족연금 수령자의 대다수가 여성이다.

 남성에게 불리하게 설계된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게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다. 종합소득이 500만원이 안 되는 지역가입자는 건강보험료를 매기기 위해 소득을 추정한다. 성·연령 보험료를 보면 20~29세 남성의 경우 9968원으로 여성(7832원)보다 2136원 많다. 다른 연령대도 비슷하게 차이가 난다. 20세 미만과 65세 이상만 남녀 차이가 없다.

 부모가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자녀의 부양 능력을 따진다. 홀어머니 김씨와 4인 가구 자녀의 예를 보자. 자녀 가구의 월 소득이 422만원 이하면 김씨는 기초수급자가 된다. 485만원을 초과하면 탈락이다. 소득이 422만~485만원이라면 자녀가 일정액을 김씨에게 부양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때 아들이냐, 딸이냐(출가한 경우)에 따라 부양비가 달라진다. 가령 아들 가구의 월 소득이 470만원이라면 48만원(470만-422만원)의 30%인 14만4000원을 부양할 돈으로 간주한다. 정부의 생계지원금에서 그만큼을 뺀다. 만약 시집간 딸이라면 48만원의 15%인 7만2000원만 뺀다. 부양비 비율이 아들은 30%, 출가한 딸은 15%다.

 재산 기준도 딸이 훨씬 약하게 설계돼 있다. 시집간 딸이 아무리 비싼 집(주거용 재산)이나 토지·건물(일반 재산)을 갖고 있어도 부양 능력을 따질 때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예금·적금·펀드 등의 금융재산은 2억원 미만이면 부모가 기초수급자가 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아들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유형별로 재산을 일일이 따져 소득으로 환산해 기준을 충족하는지를 따진다. 아들을 둔 부모가 기초수급자가 되기 훨씬 어렵다.

 딸의 재산을 거의 따지지 않고 부양비를 절반만 잡는 이유는 ‘딸은 출가외인’이라는 전통적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2000년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도입할 때 남녀 차별을 제도화했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 틀을 유지하고 있다. 방한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2)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은 인터뷰에서 “남성 차별도 걷어내야 진정한 양성 평등이다. 진정한 양성 평등은 남녀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본지 8월 6일자 8면).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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