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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와 엷음은 동전의 양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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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20국
[제7보 (86~102)]
白.曺薰鉉 9단| 黑.趙漢乘 6단

바둑은 전쟁 게임이니 코끼리처럼 무겁고 느릿해서는 이길 수 없다. 움직임은 가볍고 빨라야 한다.

조훈현9단은 타고난 재능으로 행마의 속력을 터득했다. 속력행마는 어느덧 조훈현의 분신이 돼 오랜 세월 '전류'처럼 빠르게 상대를 감전시키곤 했다.

86의 붙임에서 다시 한번 그 속도감을 느껴본다. 曺9단은 거의 본능적으로 이곳에 붙여갔는데 돌파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의 기질도 이 수를 만들어내는 데 한몫 거들고 있다. 하지만 이 수는 이미 밝힌 것처럼 너무 속도를 냈다.

趙6단이 노타임으로 87로 끊어버리자 백은 허리 잘린 군대처럼 양쪽이 화급해졌다.

빠른 것엔 언제나 엷음의 위험이 따른다. 曺9단은 '속력'으로 이기고 '엷음'으로 진다. 빠른 것과 엷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숙명적인 관계다.

86은 '참고도1'처럼 단순히 1을 선수한 뒤 3에 지켜두었으면 충분했다고 曺9단은 말했다. 누구나 아는 쉬운 수다. 그러나 실전심리는 그리 쉽게 만족할 줄 모른다.

趙6단은 아직도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다. 그러나 하변에서의 상처로 마음이 상해 있다가 87의 한방으로 희망을 되찾고 있다. 97로 가르고 나갈 때 백98도 괴로운 행마다.

자칫 '참고도2'처럼 한칸 뛰었다가는 흑2,4로 무식하게 끊어버리는 수가 있다. 바둑판의 인과응보라고나 할까. 86으로 과속한 것이 죄가 돼 이젠 98처럼 더듬더듬 움직여야 한다.

99는 날씬하다. 중앙의 흑을 배려하며 우변 흑을 압박하는 좋은 감각이다. 바둑이 살아나자 조한승의 감각도 살아나고 있다. 102로 뛰어나갔을 때 趙6단은 다시 한번 기로를 맞이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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