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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주식으로 격상하라 … 중국, 뜨거운 ‘감자 공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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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호 10면

베이징에서 열린 ‘2015 세계 감자대회’를 계기로 중국 정부는 감자를 쌀·밀·옥수수에 이은 4대 주식으로 만드는 식량안보 전략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 스샤오량·시썬그룹]

만리장성의 장관이 펼쳐진 중국 베이징(北京) 북쪽 근교의 농촌 지역인 옌칭(延慶)현 일대에서 7월 말 이색적인 국제행사 2개가 동시에 열렸다. ‘2015 중국 국제 감자산업박람회’(7월 28~29일)와 ‘2015 베이징 세계 감자대회’(28~30일)였다.

베이징서 열린 세계 감자대회

2010년 시작된 감자산업박람회는 올해가 6회째다. 1993년 캐나다에서 첫 회의가 열린 세계감자대회는 올해로 9회째를 맞았다. 그동안 미국·영국·네덜란드 등에서 열렸고 중국은 2004년 쿤밍(昆明)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주최했다.

37개국에서 800여 명의 대표가 참가하고 수천 명이 관람한 이번 행사를 계기로 감자 관련 135편의 학술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중국이 자체 개발한 자주색·적색·황색 등 18종의 감자를 사용한 100여 종의 감자 요리도 소개됐다.

시썬(希森)감자그룹 전용 부스에는 감자로 만든 빵·국수뿐 아니라 라테·케이크·아이스크림·쿠키·전병·음료수 등이 선보였다. 시식하는 관람객도 많았다. 28일 세계감자대회 행사장에는 한창푸(韓長賦) 농업부장(장관)이 직접 참관했다.

앞서 지난 1월 위신룽(余欣榮) 농업부 부부장(차관)은 ‘감자의 주식화(主食化) 전략 토론회’에 참석해 “앞으로 감자가 쌀·밀·옥수수에 이어 중국의 4대 주식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국에서 감자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지금 말 그대로 ‘뜨거운 감자’다. 중국은 왜 이처럼 감자에 주목하고 있는 걸까.

대약진·문혁 때 수천만 굶어죽은 아픔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상 이변이 빈번하게 나타나면서 안정적인 식량 확보는 73억 인류의 숙제가 됐다. 세계 최대 인구대국인 중국 지도자들의 가장 큰 고민도 13억 인민을 먹여 살리는 일이다.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굶주린 농민의 봉기가 정권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약진운동(1958∼60년)과 문화대혁명(66∼76년) 때 수천만 명이 굶어 죽은 역사를 기억하는 중국인들은 식량문제 해결이 사회안정과 국가안보에 직결된다고 여긴다.

미래의 식량안보를 보장해줄 비장의 카드를 찾던 중국 지도부는 감자의 전략적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중국 농업부에 따르면 2020년 중국의 식량 수요는 500억t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 중국인의 주식인 쌀·밀·옥수수는 재배 가능 토지 부족 등으로 인해 추가 증산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비해 감자는 추위와 가뭄에 잘 견디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대체 식량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의 농업 전문가들은 물·비료·농약·일손을 아껴주는 ‘사성(四省) 작물’로 감자를 높게 평가한다. 상온에서 저장 기간도 쌀은 1년, 옥수수는 1∼2년, 밀은 3년인데 감자는 무려 15년이나 된다.

중국의 ‘감자대왕’ 량시썬 시썬감자그룹 회장(가운데)이 다양한 감자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감자 재배농가에 보조금도 지원
연간 약 8500만t의 감자를 수확하는 중국은 이미 세계 1위 생산국이다. 그러나 단위 면적당 감자 생산 수준은 세계 92위에 그치고 있다.

위신룽 농업부 부부장은 감자의 식량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앞으로 몇 년간 감자 재배 면적, 단위생산 수준, 총생산량, 주식화 비중 등을 현저하게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8000만 무(畝· 666㎡)인 감자 재배면적을 2020년까지 1억5000만 무로 늘리고 1무당 생산량을 현재의 1t에서 2t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무원(중앙정부)은 지난해 4월 감자 생산 농가 및 기업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감자 농가에는 1무당 100위안(약 1만8800원)의 보조금을, 생산 기업에는 1무당 500위안을 지원하기로 했다. 쌀과 밀에 치우쳐온 증산 장려정책을 감자로 확대한 것이다. 지난해 6월엔 산둥(山東)성에 농업부와 과학기술부가 공동으로 ‘국가 감자 공정(工程)기술 연구센터’를 개설했다.

량시썬(梁希森·60) 시썬감자그룹 회장은 ‘중국 감자대왕’으로 불린다. 그는 “감자를 전략적 주식으로 키우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저장 능력 부족”이라며 “쌀·밀·옥수수에 이어 감자도 전략비축창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에 대비해 “널리 식량을 비축하라(廣積糧)”던 명나라 태조 주원장과 마오쩌둥의 가르침을 따르자는 제안이다.

중국 생산 감자의 절반을 식량화 목표
감자가 중국에 전래된 것은 16세기 명나라 때로 기록돼 있다. 중국인들은 감자를 마링수(馬鈴薯)나 투더우(土豆)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인들의 70%가 감자를 곡물류가 아닌 야채류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북부 일부에서 감자를 주식으로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는 감자를 반찬으로만 소비한다.

중국의 1인당 연간 감자 소비량은 41㎏ 정도다. 유럽인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은 80㎏이 넘는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중국에서 생산되는 감자의 50%를 주식으로 소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야심 찬 목표가 실현되려면 감자를 야채류로 인식하는 중국인들의 오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쌀·밀보다 지방과 칼로리는 적고 단백질은 많은 감자의 장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소비 촉진을 위해 감자 전분 비율이 35% 이상인 만두·국수·빵 개발에 성공했다. 예싱칭(葉興慶)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농촌경제연구부장은 “감자 가공과 소비 단계가 현재로선 아주 취약하다”며 “감자를 전분으로 가공해 만두·국수·빵 등으로 만들어 소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감자만이 인류 구제할 작물”
유엔은 2008년을 ‘국제 감자의 해’로 지정하면서 “미래에 식량위기가 생기면 감자만이 인류를 구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자는 유럽에서 주식으로 인기다. 프랑스인은 감자를 ‘땅 속의 사과’라고 부르고 독일인은 ‘땅에서 나는 배’로, 러시아인은 ‘제2의 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감자가 처음부터 이런 지위를 누린 것은 아니다. 감자의 원산지는 페루(2018년 세계감자대회 개최국) 안데스산맥 일대다. 스페인 탐험가 곤살로가 1565년 유럽에 처음 전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자를 ‘악마의 작물’로 여겼다. 심지어 프랑스인들은 감자를 먹으면 한센병이나 매독에 걸린다고 믿었다. 법으로 재배를 막기도 했다.

인구가 늘면서 감자를 구황(救荒)작물로 인식한 지도자는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다. 감자 보급에 힘쓴 덕분에 프로이센은 1756년 오스트리아와 시작한 ‘7년 전쟁’에서 결국 승리했다. 오스트리아는 식량이 바닥났지만 프로이센은 감자로 버텼기 때문이다. 유명한 ‘감자 전쟁(Potato War)’이다. 지금도 독일인들은 프리드리히 2세의 묘소에 감자를 바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명화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 작)처럼 감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먹거리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제 유전자변형농산물(GMO) 기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감자가 13억 중국인의 미래 먹거리로 대변신 중이다.

장세정 기자, 베이징=왕웨이 인턴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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