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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선거구 정하면 이번엔 국회서 한 글자도 못 고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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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지역 선거구를 정하기 위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지난달 15일 출범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상·하한 비율(3대 1)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대대적인 선거구 개편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사상 처음으로 독립기구로 활동하는 획정위는 총선 6개월 전인 10월 13일까지 획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선거구획정위원회 김대년 위원장(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차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출범한 획정위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선거구를 획정하라는 국민의 뜻에 따라 국회로부터 사실상 입법권을 이양받았다”며 “이번에 결정되는 선거구에 대해 국회가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아직까지도 국회에서 구체적인 획정 기준을 결정하지 않고 있어 본격적인 논의가 차질을 빚고 있다”며 “ 여야가 정치적 이해 때문에 이를 미루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오는 13일까지 경정해야 할 선거구 획정 기준은 의원정수와 지역구·비례대표 비율, 자치구·시·군의 일부 분할 여부 등이다. 이 같은 기준이 정해져야 지역구를 획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의원 정수를 놓고 여야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 시한 내 합의가 어려운 상황이다. 김위원장은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인구 상·하한 기준(2대 1)을 맞추고, 지역 대표성을 고려하려면 지역구 의석은 현행 246석에서 260석 이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의원정수에 대해 여야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독립기구로 설치된 것은 선거사상 처음이다. 그 첫 위원장을 맡게 됐는데.

“획정위를 독립기구로 설치한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선거구를 획정하라는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번 획정위원회의 활동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크다고 생각하며,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선거구 획정의 원칙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건 헌법재판소에서 결정한 2대 1의 인구비례 기준이다. 거기에 공직선거법 25조에서는 행정구역, 지리적 여건, 교통 등을 고려해 선거구를 획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역의 여건을 고려하라는 취지다. 결국, 인구 대표성과 지역 대표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할 것인지가 가장 큰 관건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제시한 인구 기준을 적용할 경우 현행 선거구의 조정범위는 어느 정도가 될까.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대로 최대와 최소 선거구간 인구비율이 2대 1이 되도록 조정할 경우, 6월 말 기준 인구 상한초과 36곳, 인구 하한미달 24곳 등 총 60곳이 이러한 기준에 맞지 않는 선거구에 해당된다. 다만, 개별 선거구가 인구기준에는 맞지 않더라도 하나의 자치구·시·군 안에서 경계 조정을 통해 인구 기준을 충족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60곳의 선거구가 모두 통합·분구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의원정수 전제돼야 선거구획정 가능

-국회 정개특위가 13일까지 획정 기준을 확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선거구를 결정할 때 지역 대표성 등을 고려한다면 지역구 의석은 현행 246석에서 260석 플러스 알파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의원 정수가 늘어나는 문제를 사전에 명백하게 결정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가 지역구 획정안을 내놨을 때 큰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지금 (의원정수를) 제시해달라는 거다. 정치력을 발휘해 의원정수를 결정해서 우리에게 넘겨줘야지 뜨거운 감자처럼 놔두고 있다가는 나중에 큰 싸움이 일어난다.”

-지역구 의석을 늘리지 않고 선거구획정을 할 수는 없나.

“기계적으로 획정하면 문제될 것은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획정안을) 내놓을 수 있다. 현재에는 가장 많은 시·군이 한 지역구에 들어간 경우가 강원도, 전라남도 등에 4곳이 합쳐진 곳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기준대로 시뮬레이션으로 해보니까 한 선거구에 7개 시·군이 합쳐지는 곳이 2곳이 나오는 것을 비롯, 6개가 한 곳, 5개가 한 곳이 나온다. 인구비례 기준을 3대1에서 2대1로 줄이다 보니 나오는 당연한 결과다.”

-인구 기준을 맞추다 보니 행정구역이 넓은 기형적인 선거구가 만들어진다는 뜻인가.

“현실적으로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은 4개 시·군 정도가 한 선거구로 합쳐지는 경우라 생각된다. 넓다고 볼 수도 있지만 현재 한 선거구로 운영이 잘 되고 있질 않나. 그러나 5개 이상이라면 지역 대표성에 손상을 가져온다는 지적이 나올 만 하다. 결국, 지역 대표성을 고려해서 선거구를 결정한다면 지역선거구 수가 불가피하게 14석 플러스 알파가 늘어난다는 거다.”

-정치권에서는 논란이 되는 의원정수는 획정안이 만들어진 뒤에 논의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건 정치권이 무책임한 것이다. 그때 가서는 논의에 따라서 얼마든지 획정위가 마련한 선거구획정안이 흔들릴 수가 있다. 결국, 의원정수를 얼마로 하느냐가 선거구 획정에 앞선 전제가 돼야 한다.”

획정안 수정 없이 본회의서 표결

-역대 선거구획정 과정을 보면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게리맨더링(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조정하는 일)이 된 사례가 많았다. 특히, 대대적인 선거구 개편이 불가피한 내년 총선에서 이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 당시 선거구획정에 참여했던 위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참여해 합리적인 안을 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법적 귀속력이 없으니까 국회에 가면 게리맨더링이 발생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계속 벌어진 거다. 게다가 선거에 임박해서야 선거구가 최종 획정되다 보니 선거 입후보 예정자나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 모두에게 혼란을 가져오게 했다. 선거의 기본을 흔드는 아주 중대한 잘못된 행태였다. 그래서 이번엔 독립된 기구가 발족됐고 (획정안 국회 처리 기한을) 11월 13일로 못을 박아놨다. 이런 시한이 철저히 준수돼야 한다.”

-획정위가 합리적인 안을 내놓아도 결국엔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겠나.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국회 정개특위는 획정안에 대하여 법률에 명백히 위반된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재적위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다시 제출해 줄 것을 1회에 한해 요구할 수 있을 뿐, 수정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설사 정개특위에서 반려를 하더라도 한번에 걸쳐서 조정만 할 수 있고 그걸로 끝이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자구 수정을 못하며, 곧바로 본회의에 올려서 표결하는 거다.”

-국회가 획정안에 대해 한 글자도 고치지 못한다는 건가.

“그렇다. 입법권을 사실상 획정위에 이양한 거다. 국회가 자체적으로 그렇게 정한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인 사건이고 정치개혁의 신호탄을 쐈다고 평가 받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해놓고도 지금 획정위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게 문제다.”

-국회에서 획정 기준을 만들어놓으면 사실상 획정위의 역할이 없는 것 아닌가.

“국회는 획정기준을 세부적으로까지는 정할 수 없다. 실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지역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면 농촌과 지역의 인구 상한 비율을 정할 때, 2대 1의 기준 중 도시 지역은 2에 가깝게, 농촌 지역은 1에 가깝게 할 수도 있다. 그만큼 획정위의 재량이 많다는 거다.”

-획정위의 향후 활동 계획은.

“선거구 획정기준이 안 나오더라도 현행법에 따라서 일단 획정 작업을 진행할 거다. 민주주의 꽃은 선거인데 그 꽃의 핵심은 선거구다. 선거구획정이 안 되면 예비후보자도 나올 수 없다. 가장 기본이 선거구다. 내년 총선의 예비후보자 등록이 12월 15일인데 이렇게 손 놓고 있다가 언제 선거구획정을 하겠나. 정치권이 무책임하게 제시된 시한을 넘기지 말고 오늘이라도 조속하게 기준을 결정해야 한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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