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상을 바꾸지 못한 남자 그래서 케인은 '시민'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단어 중 하나가 ‘로즈버드(rosebud)’ 다. 이 말이 유명해진 이유는 오손 웰즈의 데뷔작 ‘시민 케인’ 덕분이다. 얼마 전 발표된 영국 BBC의 미국 영화 베스트 100 선정에서도 늘 그랬던 것처럼 1위에 등극한 ‘시민 케인’은 미국 영화의 신화가 된 작품이다. 오손 웰즈는 이 영화에서 케인이라는 인물의 신화 벗기기에 나선다.

케인이 마지막에 남긴 말 로즈버드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다니는 톰슨 기자에게 케인과 한 시절을 같이 보냈던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하고 경험한 케인을 들려준다. 그리고 톰슨 기자는 허망한 결론에 도달한다. “로즈버드는 그가 가질 수 없었던 것, 아니면 그가 가졌지만 잃어버린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민 케인’은 로즈버드의 의미와 케인이라고 하는 인간의 허망한 인생을 추적하는 영화일망정 결코 허망한 영화는 아니다. 그만큼 영화가 던져주는 주제 의식은 묵직하다. 이 영화에 쓰인 유명한 기법 ‘딥 포커스(deep-focus·광각렌즈를 이용, 초점을 화면구도의 중앙에 맞춰 전경과 후경 모두를 선명하게 찍는 촬영기법)’는 관객을 인간의 내면으로 한 발짝 데려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케인의 지인들이 들려주는 증언은 너무나 생생해 우리는 전기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그것은 허망한 말들의 향연이다. 그들의 말을 증명할 길도, 그들의 사랑과 증오에 반문할 방법도 없다. 세상을 떠난 한 인간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되새김질 할 따름이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의 공허감

25살의 젊은 감독은 생뚱맞게 던져진 로즈버드의 의미를 쫓는 과정을 통해 누구나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공허를 절묘하게 묘사해 낸다. 로즈버드는 결국 삶의 공허함에 대한 치열한 의미 추구의 상징이다. 허망한 인생을 만들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각자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는.

케인 역시 그렇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양아버지 대처와 싸우며 자본가를 공격하고, 막대한 유산으로 인콰이어러지를 인수하는 혈기방자한 모습을 보여준다. 주지사 선거 막판에는 스캔들로 인해 무너져 버리기도 하며, 정치를 포기한 채 조금은 모자란 수잔이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도 한다. 그토록 대중 앞에서 호방했지만 결국 대저택에서 홀로 죽는 삶을 맞는다.

잘 알려진 것처럼 케인의 모델은 동시대 언론인이었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였다. 그는 이 영화의 제작 소식을 듣고 개봉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관객의 입장에서 허스트와 영화의 사실관계는 전혀 흥미롭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해석과 상상력으로 로즈버드를 찾아 저마다의 케인을 발견하는 재미야말로 이 영화의 매력이다. 이번에 내게 다가온 케인은 정치적 스캔들 이후 급격하게 몰락하기 시작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젊은 날의 케인은 세상에 다가가려고 싸웠지만 중년 이후의 케인은 세상을 자기 안에 가두어 버린다. 거대한 성을 짓고 세계의 풍물을 사들인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 한 남자의 좌절의 이야기다. 그래서 로즈버드는 썰매일 수도, 수정 구슬일 수도, 두 번째 아내 수잔의 노래소리일 수도 있다.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

꿈이 좌절된 자의 비극

케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의 의미를 무엇으로 채우든 가능하게 되어 있는 이 영화의 신비로운 구조는 아메리칸 드림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20대에 쓰여진 또 하나의 위대한 미국 작품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리게 한다.

1925년 발표된 ‘개츠비’는 ‘시민 케인’의 선배다. 독자들은 개츠비가 벌이는 사업이 정직하지 못하고, 그의 모순적 인간됨을 소설 곳곳에서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에는 ‘위대한’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무엇이 도대체 위대한 것일까.

강 건너 집을 짓고 매일 밤 파티를 벌이는 개츠비의 목적 중 하나는 첫 사랑이었던 데이지에게 다가가기 위함이었다. 화자인 닉은 그런 개츠비를 보며 연민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톰슨 기자도 두 번째 부인 수잔에게 “케인에게 동정심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런 인물들은 모두 거친 인생을 살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순수하고 순진한 구석들이 있다. 바로 그것을 두고 피츠제럴드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으며 오손 웰즈는 ‘시민’이라는 표현을 썼다. 시민은 보통 사람, 보통 미국인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케인이 보통 사람일 수가 있는가. 그렇다. 꿈이 좌절된 자이기 때문이다. 좌절된 자의 초상은 시대를 넘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기꺼이 저마다의 로즈버드를 지니고 극장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시민 케인(Citizen Kane·1941) 미국, 119분, 감독 오손 웰즈

“살아가면서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건 사랑이었소. 그게 찰리의 이야기요.”
?등장인물 리랜드의 대사에서

신문왕 찰스 포스터 케인이 플로리다의 대저택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난다. 부고 영상에서 뭔가 아쉬움을 느낀 편집장 록스톤은 그가 임종 직전에 남긴 ‘로즈버드’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보라고 기자 톰슨에게 지시한다. 톰슨은 케인의 주변 인물 취재를 통해 그의 삶을 재구성한다.

낡은 여인숙을 운영하던 부모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 은행가 대처에게 입양되어 운명이 바뀌던 순간, 성인이 되어 당시 별 볼일 없었던 뉴욕 인콰이어러지를 인수하고 신념을 펼치던 순간, 대통령의 질녀 에밀리와의 결혼, 승리를 앞둔 주지사 선거 전의 모습, 우연히 만나게 된 수잔 알렉산더와의 사건, 그리고 이어지는 몰락. 신문사가 하나둘 문을 닫고, 두 번째 아내 수잔도 그를 떠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