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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허술한 피해자 신변 보호가 또 희생 불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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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스토킹을 당하던 대구의 한 주부(48)가 지난 27일 흉기에 찔려 숨졌다. 경찰은 스토킹을 한 A씨(44)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용의자는 나흘째 잡히지 않은 상태다. 경찰은 주부가 살해되기 전 A씨에 대해 협박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에선 증거 보강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피해자는 경찰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다. 수사기관의 피해자 신변 보호 시스템에 또다시 구멍이 뚫린 것이다.

 현행 범죄피해자보호법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범죄피해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을 경우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규정돼 있다. 검사는 중대 범죄의 신고자나 피해자, 증인, 그 친족 등이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으면 그들의 신청을 받아 피해자 보호시설에 일정 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스토킹 용의자는 영장이 기각돼 풀려났고, 피해자는 집 근처 골목길에서 살해당했다.

 경찰·검찰이 피해자 신변 보호를 제대로 못해 피해자가 희생당한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2012년 4월 오원춘에게 살해당한 여성이 대표적이다. 당시 피해자는 112신고센터에 성폭행을 당했다고 전화를 걸었지만 관할 경찰이 신속히 대응하지 못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피해자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2심에서 크게 깎여 겨우 213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냈을 뿐이다.

 특히 스토킹 범죄는 수사기관에서 가볍게 생각해 피해자의 신변 보호를 허술히 하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가 신변 보호를 요청해도 경찰은 인력 부족을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스토킹·이별 등으로 인한 살인사건은 매년 40~50건이나 발생할 정도로 심각하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보복범죄나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다. 이를 소홀히 해서 피해자가 살해당한다면 국가가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경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 신변 보호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점검하고,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