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후진적 가족 경영이 부른 롯데그룹 ‘형제의 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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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롯데그룹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내세워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밀어내려 하자 동생이 형은 물론 아버지마저 내쳤다. 두 형제의 싸움은 결국 주주총회 대결로 결판나게 됐는데 서로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그룹을 차지하기 위한 형제간 쟁탈전의 승자는 오리무중이 됐다. 일본 언론은 뼈와 살의 싸움, 골육상쟁(骨肉相爭)이라고 불렀다.

 막장 드라마 뺨치는 이번 사태는 그간 한국 재벌가에서 흔히 벌어졌던 경영권 분쟁과 판박이다. 삼성·현대·한진·한화·금호·두산·효성 등 주요 그룹 대부분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형제간 다툼을 벌였다. 급기야 일본롯데 70년, 한국롯데 50년 동안 한 번도 경영 분쟁이 없었다고 자랑하던 롯데마저 사달이 났다.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야 할 재벌 그룹이 경영권 싸움으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으니 지켜보는 국민은 착잡하기만 하다.

 이런 분쟁이 벌어진 근본 이유는 한국 재벌의 후진적 소유 지배구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10대 그룹 총수의 지분율은 평균 0.9%였다.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보니 경영권 세습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롯데도 마찬가지다. 신격호 회장의 지분은 0.05%고 총수 일가 지분을 다 합해도 2.41%에 그친다.

 롯데그룹은 지배구조도 가장 복잡하다.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전체의 순환출자 고리 459개 중 무려 90.6%다. 롯데쇼핑→롯데카드→롯데칠성음료→롯데쇼핑, 롯데쇼핑→대홍기획→롯데정보센터→롯데쇼핑, 롯데제과→롯데칠성→롯데쇼핑→롯데제과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출자 고리를 통해 오너인 신격호 회장이 그룹 전체를 지배해왔다. 그러니 가족 기업이 아닌데도 가족끼리 그룹 전체 계열사의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가족 경영이 가능했던 것이다.

 롯데는 호텔·유통·식품으로 연매출 83조원을 올리는 재계 5위 그룹이다. 직접 고용만 12만 명, 협력업체의 간접 고용까지 합하면 35만 명이나 되는 국내 고용 1위 기업이기도 하다. 신동빈 회장은 “가족 일로 기업이 흔들려선 안 된다”고 했는데 이번 일로 12만 직원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그렇지 않아도 국민은 재벌의 지배구조에 의구심을 갖고 있고 반재벌 정서도 여전하다. 롯데 사태로 부정적 여론이 더 커질까 걱정스럽다.

 다른 재벌들도 숨죽이며 사태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마침 삼성과 헤지펀드 엘리엇의 분쟁으로 우리 대기업의 경영권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하필 이럴 때 이런 일이 터졌으니 법 제정을 추진 중인 국회도 난감할 노릇이다. 정부·기업·국민이 힘을 합해도 경제 살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롯데 오너 일가는 서둘러 분쟁을 끝내 야 한다. 그게 롯데를 사랑하고 키워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