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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면 풀고, 넘치면 죄고 … 공급 탄력 조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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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30일 부산신항에서 검역 대기 중인 수입 쌀. 저율관세할당 물량으로 들여온 4만t 쌀의 일부다. [중앙포토]

1993년 12월 스위스 제네바.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에서 시작해 7년 여를 끌어온 농축산물 시장 개방 협정이 막을 내렸다. 한국을 비롯한 117개국을 아우르는 ‘우루과이 라운드’의 출범이었다. 바로 다음해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에 따라 ‘저율관세할당(TRQ)’이 탄생했다. 외국산 농축산물을 수입할 때 품목별로 일정량에 대해선 낮은 관세를, 한도 이상 물량에 대해선 높은 관세를 적용하는 제도다. 수입 문호를 열어놓고 동시에 자국 시장을 보호하는 문턱도 설계한 이중 관세 전략이다. 이재욱 농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은 “TRQ는 외국산 농산물을 국내 시장에 들여올 수 있도록 기회를 의무적으로 보장해야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며 “국제사회에서 정한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농축산업 외교 지렛대로 출발한 TRQ는 20년이 지나 정부의 농산물 수요·공급 관리 대책 중 핵심 도구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종류의 농산품 수요는 느는데 반해 세계 곳곳의 이상 기후와 수급 불균형으로 가격 불안은 더 심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농산물 시장의 개방이 확대되면서 TRQ는 한국 뿐 아니라 각국의 물가 안정책으로써의 역할도 해내고 있다.

 한국은 현재 63개 농축산 품목에 대해 TRQ를 적용하고 있다. 쌀, 보리에서 시작해 묘목, 누에고치까지 주요 농산품을 아우른다. 물량은 국내 생산·소비량과 수입 수요에 따라 다양하게 설정됐다. 쌀 40만8700t, 보리 2만3582t, 고추 7185t, 생강 1860t 등이다. 품목마다 정해놓은 물량은 1.8~50%의 낮은 관세를 적용받는다. 한도를 넘어선 물량은 최대 600%가 넘는 관세가 얹어져 수입된다. 그렇다고 의무적으로 정해진 한도 물량만큼 수입할 의무를 한국 정부가 지고 있진 않다. 국내 농민과 유통인, 소비자가 참여하는 ‘수급조절위원회’의 심의와 판단을 거쳐 TRQ에 따른 수입을 결정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올 6월 이후 양파 값이 급등하자 TRQ란 칼을 빼들었다. 관세 50%가 적용되는 양파 TRQ 물량 2만1000t을 조기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단계적으로 수입을 하고 있다. 양파의 정상(고율) 관세는 135%다. 낮은 관세분만큼 국내에 값싼 수입 양파를 공급해 치솟는 가격을 잦아들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잘 쓰면 물가 잡는 칼이지만 조심스러운 사용은 필수다. 국내 농산물 생산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31일 농식품부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를 통해 수입 밥상용 쌀 3만t, 가공용 쌀 1만1000t에 대한 구매 입찰을 마감한다. 이는 TRQ 물량으로 5%의 낮은 관세를 적용 받아 값이 매우 저렴하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밥쌀 수입은 국산쌀 값 폭락을 불러온다”며 이날 서울에서 항의 집회를 열기로 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저율관세할당(TRQ)=1990년대 초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산물 시장 개방 협정 ‘우루과이 라운드’에 기반한 관세 제도. 외국산 농축산물을 수입할 때 일정 물량에 대해서만 낮은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넘어서는 물량에 대해서 높은 관세를 매기는 방식. 당초 67개 농축산물이 대상이었으나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렌지 주스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면서 현재는 63개 품목이 TRQ 적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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