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복면가왕 클레오파트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정재
논설위원

2주 전 50~60대 남자 5명이 강남의 작은 레스토랑에 모였다. 대학 총장부터 국회의원, 국책연구소 임원, 회계법인 임원까지 다양했다. 식당에선 ‘가질 수 없는 너’ ‘만약에 말야’ ‘이 밤이 지나면’ ‘사랑 그놈’이 메들리로 흘러나왔다. 복면가왕 클레오파트라의 노래였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복면가왕으로 이어졌다. 함께한 지인 모두 클레오파트라를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 며칠 뒤 클레오파트라가 결국 가수 김연우로 밝혀졌지만, 모두 그가 100% 김연우임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걸그룹의 힘은 흔히 삼촌 부대에서 나온다고 한다. 걸그룹도 아닌 클레오파트라가 50~60대 삼촌 부대를 휘어잡은 힘은 뭘까. 클레오파트라가 가수 김연우가 할 수 없는 것을 다 할 수 있었기 때문 아닐까. 외모·편견·장르…. 김연우로 규정지어진 모든 것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자유로웠다. 다른 가수의 노래를 제 것인 양 불러도, 더 잘 불러도, 용서가 됐다. 클레오파트라는 이를테면 바비킴보다 ‘사랑 그놈’을 더 감칠맛 나게 불렀다. 복면 속의 그는 김연우지만 복면을 쓴 그는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였다.

 나는 복면가왕이란 TV프로그램이 클레오파트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클레오파트라 이전 프로그램을 끌어간 힘이 복면의 평등·익명·참신성이었다면 클레오파트라 이후엔 오직 노래의 힘, 그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보컬의 신’ 김연우는 ‘노래의 신’ 클레오파트라로 재탄생했고, 그 강력한 호소력 앞에 50~60대도 무기력했다.

 복면가왕은 편견을 깬 음악쇼, 아이돌의 재발견, 추억의 현재화(잊혀진 가수의 재탄생)로 인기몰이를 했다. 사회에 던진 메시지도 크다. 우리 눈의 전봇대를 뽑고 나서 보면 세상은 훨씬 아름답고 공평하다는 것을 알게 했다. 우리가 얼마나 비뚤어진 눈으로 세상을 보는지도 알게 했다.

 복면가왕의 메시지를 더 확산해보면 어떨까. 예컨대 보수·진보의 대표 논객이 복면을 쓰고 토론했다 치자. 그래도 ‘꼴보수, 좌빨’ 하는 꼬리표가 붙었을까. 학연·지연·혈연의 3연(三緣)이 없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지금보단 살 만한 곳이 돼 있지 않을까.

 복면가왕식 편견 지우기는 꽤 오래전, 여러 곳에서 시도됐다. 『블링크』에서 말콤 글래드웰은 유명한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편견을 깬 ‘장막 오디션’ 얘기다. 때는 1980년 여름. 아비 코난트가 트롬본 오디션에 합격한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트롬본 연주자로 여자를 뽑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음악감독 세르주 켈리비다체는 아주 보수적이어서 ‘남자 악기’인 트롬본을 여자가 연주한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유럽의 대부분 음악감독처럼 여자는 폐도 튼튼하지 못하고 힘도 달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완강했던 금녀의 벽은 ‘장막 뒤 오디션’ 앞에 무너졌다. 장막이 걷힌 뒤 켈리비다체는 “오 마이 갓”을 외쳐야 했다. 그는 그러나 자신의 ‘실수’를 되물릴 수 없었다. 코난트의 압도적인 실력이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유럽 오케스트라엔 여성 연주자가 크게 늘어났다. 장막만으로 세상은 한결 공평해진 것이다.

 자칫 그냥 인기 프로그램으로 끝날 수 있었던 복면가왕이 인기폭발, 사회현상화한 데는 클레오파트라의 공이 크다. 복면 속 가수 김연우를 뛰어넘는 천재 가수 클레오파트라, 그 앞에 3연의 철옹성이 속절없이 부서졌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천재 한 사람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복면만으로 세상은 한결 공평해진 것이다.

 복면가왕 클레오파트라는 내게 뜬금없는 생각마저 들게 했는데, 이런 것이다. 사실은 복면만 씌우면 초천재인데 우리가 아직 못 알아보고 있는 이들이 주변에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사실은 그런 초천재가 우리 사회엔 널려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 복면을 씌우면 우리네 세상도 확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골몰하면서 나는 지난주 복면가왕은 보지 않았다. 김연우가 복면을 벗으면서 클레오파트라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나도 멋진 복면 하나 장만해봐?

이정재 논설위원